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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고있는 것들은 진실인가. 손님은 왕이다
smire0701 2006-02-15 오전 12:08:04 973   [4]

2006.02.08 중앙 시네마 시사회

 

<주> 이 글에는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읽는 것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는 영화의 내용을 알고나면 영화적 재미를 완전히 망치는 영화입니다. 특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나는 너의 더럽고 추악한 비밀을 알고 있다."

 

예전에 <누구나 비밀은 있다>(장현수. 2004.07)라는 영화가 있었다.  사실 이 영화의 제목과 내용은 이미지가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것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임펙트있는 제목이 아니었던가 한다. 단 한줄로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엄청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니 말이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고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면 알고 싶은 그런 비밀.

 

자신의 주위를 편집증적으로 깔끔하게 정돈하던 평범한 소시민(?)의 사람을 뒤흔드는 것은 단 한줄이 적인 메모이다.

우리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을 꼽으라면 쉽게 사고나 큰 병, 혹은 불시에 찾아오는 커다란 사건(사업의 실패, 실직, 배우자의죽음 등등)들을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가장 인간에게 위태로운 것은 자신이 지켜오고 익숙한 일상의 평범함이 파괴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불행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게 하거나, 불만족스러운 직장 생활을 지속하게 만들거나, 짜증나는 친구들과의 인연을 지속하게 만든다.

 

삼대째 내려오는 <명이발관>을 운영하는 '안창진'(성지루)의 정적을 파괴하는 것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김양길'(명계남)이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그의 존재는, '안창진'이 오랫동안 일궈왔고 그에게 지극히 안전한 공간이었던 <명이발소>를 지옥으로 만든다.

 

 
 
 


이발소는 바깥의 동네 풍경과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꽤 후즐근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주변 환경과 외관을 지닌 이발소는, 일단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목있는 그림과 인테리어를 갖추고 클래식 음악이 흐르며 먼지하나 없는 청결함을 자랑한다. 이곳을 나서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알수 없이 바쁜 아내도, 이발소 안에서는 상냥하기 그지없는 아내이다.

안전한 그의 공간에 불시에 찾아든 불청객은 그의 삶을 마구 들쑤시기 시작한다. 그는 그를 협박해서 돈을 빌려(?)가는것도 모자라 그의 아내를 넘보고, 그의 인격과 자부심을 짓밟는다. 이발소는 이제 안전한 그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지옥같은 그의 고통의 무대가 된다.

그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는 그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해결사('이장길':이선균)를 찾는다.

이 불쾌한 시작은 어쩌면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을 연상시킨다. 평범한 일상을 깨고 끼어드는 불쾌한 불청객.

 

묘하게도 이 이발소라는 공간은 관객을 감정 이입에서 약간 떠어뜨려 놓는 듯이 보인다. 관객은 영화를 보며 '안창진'(성지루)에 동화되어 고통스러워하기 보다는,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느낌을 받는다. 마치 연극 무대를 바라보는 듯한 이 포지셔닝은 관객을 감정적인 고통보다는 "이 협박자는 누구이며 왜 '안창진'에게 접근했는가?"라는 의문에 충실하게 만든다.

 

이것은 마치 원래 어떤 그림인지를 알수 없는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퍼즐 맞추기의 위험은, 불규칙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하나의 조각들을 기다리며 관객들이 흥미를 잃어버릴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영화는 영리하게도, 지속적인 호기심의 이동으로 관객들의 흥미를 유도한다.  조각이 맞추어져 갈수록 생각과는 다른 그림이 나오는데다가, 완전히 그림이 맞추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튀어나오는 전혀 다른 완성본. 일반적인 스릴러와는 또 다른 반전의 재미를 준다.

 

배우들의 연기는 또한 어디하나 흠잡을데 없다. 깊이있는 연기를 보여주던 조연전문 배우들(명계남, 성지루)의 저력을 느끼게 한다.

명계남은 극의 중심과 반전을 모두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고, 좀 나약한 캐릭터인지라 묻히기 쉬운 '안창진'을 무게감있게 끌어가는 성지루는 무게감있다.  성현아의 연기도 걱정과는 달리 안정적이고, 해결사 '이장길'역의 이선균은 눈이 번쩍 띄이게 한다.

상황과 좀 떨어져서 바라보게 하는 감독의 연출 속에서 실제감있게 다가오는 배우들의 연기는 더도 덜도 아닌 딱 완벽한 균형으로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뚜렷하고 색깔있는 연기와 말끔한 스토리 속에서 눈을 끄는 것은, 요즈음 보기 드문 정갈한 미술이다.  연극 무대를 연상시키는 이발소의 풍경은 인상적이다. 

완벽하게 정돈된 공간은 '안창진'의 깔끔한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가 자신의 공간을 가꾸는 것 이외에는 그닥 할 일도 없고 외로운 인물임을 드러내 보인다.  벽에 걸려있던 감각적인 그림은 그가 일찌감치 포기해 버린 자신의 꿈에 대한 한가닥 미련이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옳은 것이라 믿으면서 자신은 행복하다는 결론을 내기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집착하는 '안창진'의 성격을 그대로 내보인다.

영화의 시작에서 보여지는 '전연옥'의 장신구들은 그녀의 화려함을 쫓는 성향을 그대로 보여줌과 동시에, 출근을 하며 반지를 빼는 모습을 통해 이발소 안과 밖을 철저하게 구분해서 살아가는 그녀의 생활을 극명히 드러내 보인다.

'김양길'의 손에 새겨진 문신들은 정체불명인 그의 지난날을 짐작함과 동시에 그의 성향을 드러내준다.

 

단순히 '아름다운' 미술을 넘어 극을 끌어나가는 중요한 요소로써의 미술이 힌트로 관객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마치 셜록홈즈가 처음 찾아온 의뢰인의 직업이나 행적을, 그의 옷깃의 흔적이나 소매의 얼룩등을 통해서 맞추는 것과 같은 '추리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힌트들로 짐작을 해나가며 퍼즐을 맞춰가던 관객들은 생각지도 못한 결말을 받는다.

 

이 영화의 결말에 놀라는 이유는 아마도, 필자가 상식적인 선에서 힌트들을 해석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행색이나 태도들을 통해서 상대를 짐작한다. 이것 또한 일종의 퍼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쉽게 '나'를 전부 드러내지는 않는다. 설사 완전한 '나'를 보여주고 싶다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에는 자신의 선입견이나 가치관이 작용하기 마련이고, 이것은 대상을 왜곡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보고 싶은 방법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명계남'이라는 배우의 개인적인 사실을 영화의 반전의 요소로 끌어온 것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관객을 당황시키는 것은, 지금까지 관객에게 주어진 힌트가 이 '상식적인 해석'으로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이 '상식적인 해석'의 함정은 이발사 '안창진'을 더욱 큰 위험으로 몰아넣는다.

'안창진'은 자신이 행복이라 믿는, 그러나 어쩌면 절대 행복하지 않은 자신을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집착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그는 그 '안전한 공간'을 지키기 위해 협박자를 제거하고자 하지만, 그가 끌어들인 해결사는 결국 더욱 큰 위험이었다.  그는 협박자가 제거됨으로써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거짓을 숨기기 위해 저지른 또 하나의 거짓과, 또다른 협박자가 되어버린 해결사로 자신을 더욱 큰 위험으로 몰아넣는다.

 

'김양길(명계남)'은 자신의 거짓을 위해 '안창진'(성지루)의 거짓을 이용한다. '안창진'(성지루)은 자신의 거짓을 숨기기 위해 '이장길'(이선균)을 끌어들인다. 이 속에서 자신의 거짓을 지키기 위해 '전연옥'(성현아)은 다른 사람들을 이용한다. 그리고 그 거짓들의 냄새를 맡은 '이장길'(이선균)이 거짓들을 이용하기 위해 얽혀든다. 그리고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거짓들은 자신들이 진실이라 믿는 '거짓'을 위한 것이다.

 

각자의 거짓들이 만나서 상황을 만들고, 그 거짓을 덮기 위한 또 하나의 거짓이 더욱 큰 위험을 만든다.  그 거짓으로 지키려고 하는 일상은 사실 믿음과는 다른 '거짓'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살아가는가.

누구나 비밀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키는 그 비밀은 과연 진실인가. 우리가 믿는 모든 것들은 과연 진실일까.

 

처음에 언급했던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 또한 결말에 이르러서는 생각지도 못한 결론에 이르른다. 책을 읽어나가던 독자들이 믿고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진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불쾌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 영화가 불쾌한 이유는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이 진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진실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하는 거짓은 어느 순간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모든 것을 침식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은 진실로 믿어지며 '비밀'이 된다.

 

우리가 믿는 것들은

과연 '진실'일까.

 

 

 

and so on

 

영화의 완성도와 함께 이 영화의 이미지들은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눈동자에 비춰진 면도칼, 선글라스에 비춰진 흑백의 바닥, 중간중간 끼어드는 무성 영화의 이미지들.

영화의 느낌을 살려주기 위한 '이미지'와 영화의 힌트로 등장하는 '이미지'의 적절한 조화 역시 이 영화의 미덕이 아닌가 한다.

단순히 '이미지'만을 위한 영화들 속에서 오랫만에 극을 위한 미술을 만난 즐거움 역시 이 영화에 필자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정갈한 연극 한편을 본 듯한 느낌.

'균형의 미덕'이 뛰어난 이 영화가 제 값을 인정받길 응원하고 싶어진다.

 

 

written by suy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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