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우리가 씨네큐브에 가서 보려던 영화는 이게 아니었다. 우리는 <파니핑크>를 만들었던 도리스 되리감독의 영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을 보려고 했었었다. 그러나 표는 1장 밖에 남지 않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던가 다른 영화를 선택해야 했다. 표가 남는 다른 영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위험스런 일이었으나 영화를 사랑하는(후훗) 우리들은 주저없이 <라스트 키스>의 표를 끊고 자리에 앉았다.
영화는 의외로 꽤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포스터와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영화 자체는 재미와 고뇌와 휴머니즘이 적절히 뒤섞인 괜찮은 영화였다. 선댄스 영화제 관객인기투표 1위, 이탈리아 박스 오피스 1위, 라고 적혀 있는 것이 빈 말은 아니었구나.
영화를 보고 나오며 가을이와 나는 재미있네, 응, 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난 그렇게 휴머니즘으로 흘러가는 거 싫더라.”
휴머니즘. 이제 영화에서 휴머니즘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어떤 영화적 실험보다도 더 위험한 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가르치는 중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수업전에 기형도의 시를 보여 준적이 있었다. 그러자 대뜸 한 아이가 한 말은 나를 오랫동안 충격에 빠뜨렸다. “시가 구려요.” 그때 내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얼마나 슬펐는지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시대가 변하면 개념도, 사상도, 인간도 변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나도 이미 나의 부모 세대와는 판이한 생각의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이제는 조금씩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희망, 나도 이제 휴머니즘을 이야기하는 영화를 재미없다고 툴툴대는 거, 자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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