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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게 채색된 어두운 이야기, 사생결단에 대하여 사생결단
jasonlee 2006-07-31 오후 4:54:57 1362   [7]
출처 - 개인 홈페이지 http://www.jasonlee.pe.kr


대부분의 영화들은 굳이 픽션임을 밝히지 않는다. 밝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코엔 형제의 ‘파고(Fargo,1996)같은 영화는, 허구이면서도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며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들어 놓고는 나중에 ‘사실은 그 자막까지도 영화, 즉 픽션의 일부분이었다’라고 밝힌다.

그렇다면 이 영화 첫 부분의 ‘철저한 픽션’임을 밝히는 자막은 무엇인가. 사실 영화는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영화가 분명한 허구임을 나타내주는 부분은 그 자막 외에는 없다. 오히려 나이트 클럽 ‘아시아드’는 허구가 아니라 부산 동래구에 실존하는 업소이기도 하다. 리얼리티가 손상될 수 있음을 미연에, 그것도 역 방향에서 틀어막아버리는 불필요한 자막을 들이미는 감독의 능청스러움, 그것이 이 영화 ‘사생결단’을 줄기차게 밀고 나가는 힘이자 매력이다.


‘시생결단’의 이야기 축은 전형적인 느와르 영화의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마약제조자인 삼촌에게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을 전가 시키려 하지만 그 자신 철저하게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마약 판매상 이상도, 동료 형사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한답시고 역시 자신의 욕망을 쉬지않고 좇아가는 도경장, 그리고 이 두 사람 사이의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핵심이다. 마약제조상과 결탁하여 출세를 노리는 검사와 마약제조로 거의 모든 인생을 허비했지만 결국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상도의 삼촌이 이야기 진행을 도운다.


많은 느와르 영화나 경찰영화와 비교하여, ‘사생결단’은 영화의 요소에서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인다.90년대 IMF를 배경으로 함을 강조하는 것인지, 세련되기 보다는 복고풍이다. 전체적인 색조는 심각한 느와르 영화들이 즐겨 사용하는 푸른 빛을 띤 흑색 톤을 거부하고 도시의 나트륨 등을 연상시키는 따뜻한 오렌지 톤으로 구성되어있다. 비장미를 강조하는 어두운 배경과 강한 콘트라스트 보다는 가벼운 색대비를 선택했다. 극단적인 흑백의 배치를 피하고 비교적 밝고 사실적인 조명과 색 대비를 강조하고 있다.

의상이나 무대장치, 혹은 음악들은 90년대가 아니라 80년대 분위기다. 도경장의 차림새나 썬글라스는 그야말로 80년대의 전형적인 복식이며,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배경이 부산임을 한껏 강조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그 분위기 만큼은 분명 80년대이다. 심지어 용두산 공원에서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50년대에 속한다. 지나치게 시끄럽고 과도한 배경음악이 집중을 방해하는 부분이 군데 군데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음악의 선택은 무난하다.

편집 또한 매우 중성적이다. 급박함과 역동성을 강조하는 빠른 편집은 불가피한 경우만 사용하고, 의도적인 롱 테이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반적인 편집속도는 중간 정도이고, 한 쪽을 강조하지 않는다. 다만 역시 리얼리티를 강조하기 위함인지, 일관된 핸드헬드 카메라 촬영은 극의 분위기와 적절하게 어울린다.


줄거리의 핵심은 삶의 두가지 유형을 제시하고, 그들 사이의 먹이사슬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약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즉 사회적으로 지탄 받는 ‘뽕쟁이’에 속하는 상도와 그의 삼촌, 마약상을 체포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즉 이른 바 ‘법질서 수호자’인 경찰과 검찰, 이 두 상반된 삶의 유형이 영화를 이끄는 두 축을 형성한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만 사회의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을 차지하는 등장인물들일 뿐, 그들은 하나같이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충실할 뿐이다. 등장 인물들 혹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욕망을 극복해 내기는 커녕 끝없는 욕망의 충족만을 위해 살아가는, ‘욕망의 노예’일 뿐임을 영화는 강조한다. 그것은 사실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며,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이 감독의 주제의식인 듯 하다. 하지만 ‘시생결단’은 심각하지 않다. ‘인간은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 ’라는 무거운 주제를 살짝 발효시켜 경쾌하고 부담 없이 즐기도록 해 주는 것이 ‘사생결단’의 가장 뛰어난 점이라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 장치들의 선택은 매우 적절하게 보인다. 매우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영화의 요소들은 가볍고 심각하지 않으며, 플롯과 장치들은 조화를 잘 이루어 박력있고 투박한 표현을 적절하게 구사한다. 전체적인 영화의 구성이 튼튼하고, 많은 요소들이 감독이 나타내고자 한 영화의 분위기를 충분히 나타내 주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몇몇 씬 들을 지나치게 오래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삼촌이 산동네 노인들과 같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구태여 긴 씬으로 만들 이유는 없었다. 추자현의 눈물 연기를 클로즈업 하는 것은 ‘이래도 울지 않을래?’식의 신파조 최루탄 작전이 아직 감행되고 있는 듯하여 아쉽다. 이런 부분들이 속도가 빨라야 될 부분에서 지나치게 지체를 보임으로써 전체적인 박진감에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열연을 보여준 류승범이다. 그는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영화의 리얼리티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히고 있다. 바로 부산 사투리가 그것이다. 타 지방 사람들이 그의 말씨를 경상도 사투리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문제삼을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류승범의 말투는 누가 들어도 경상도 말씨는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만 완벽한 사투리는 커녕 어느 지방의 말인지 알 수 없는 억양을 뱉어낸다.

연기는 몸만으로 그럴 듯 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말 또한 충분한 그럴듯함을 나타낼 수 있어야 그것이 올바른 연기이다. 류승범은 영화를 찍은 후 이렇게 이야기했다. “부산사람이 서울말씨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없듯이 서울사람이 부산말씨를 완벽하게 하기는 힘들다. 그렇게 이해해달라” 보통사람의 말씨 이야기라면 그 말은 정확하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배우가 아닌가. 그런 배우가 ‘흉내 내기 힘드니까 이해해 달라’고 말한다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만약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의 사투리를 구사할 수 없는 배우였다면 이것은 감독의 미스캐스팅에 해당할 것이다.

반면, 황정민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그는 마산출신이라는 장점을 십분 활용, 완벽한 경상도 사투리(사실 그의 말은 ‘마산 사투리’이다.)를 구사한다. 그의 말씨는 어지간한 경상도 사람보다 더 경상도스럽다. 80년대식의 복장과 썬 글래스를 끼고 80년대 식의 행동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그야말로 ‘뽕쟁이한테 맞기나 하고, 죽은 동료형사 마누라의 따까리나 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아가지만,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서글픈 형사 ‘도경장’을 필요한 만큼 구체화시킨다. 그의 눈매, 그리고 얼굴과 턱이 움직이는 것을 보라. 그의 움추린 어깨, 느린 듯한 손짓, 그 모든 것은 영화를 끌고 나가는 엔진과도 같이 작용한다. 이 놀라운 연기는 마치 ‘셰인(Shane,1956)’에서의 잭 팰런스(Jack Palance)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황정민이 영화의 분위기를 파악한 후 그렇게 연기 했든, 영화가 그가 창출한 캐릭터에 맞추어지도록 만들어졌든, 그는 이 영화의 ‘페이스 메이커’로서 손색이 없다.


여러가지 사소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사생결단’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경쾌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감독은 자신이 보여주고자 한 바를 거의 대부분 보여주며, 재미와 박진감을 적절히 만들어냈다. 오락영화로서 ‘사생결단’은 독특한 분위기의 느와르를 구현했고, 할 만큼의 역할을 충분히 다 수행한 듯 하다. 다만, 영화의 많은 부분을 황정민의 연기에 의존하고 있음은 썩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도경장 역이 그가 아니었다면 완전히 엉뚱한 영화가 만들어 졌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사생결단’은 감독의 영화라기 보다는 오히려 황정민의 영화에 가까운 듯 하며, 이는 작가주의적인 영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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