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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은 언제나 위험하다 구미호 가족
jimmani 2006-09-18 오전 12:38:39 960   [2]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본격적으로 뮤지컬을 시도로 한 한국영화는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어쩌다가 패러디 비슷하게 뮤지컬스러운 장면을 끼워넣은 영화는 봤지만, 본격적으로 영화 속에 노래 여러 곡을 집어넣고 배우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수시로 부르게 하는 본격 뮤지컬 영화는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헐리웃에서 만든 수많은 뮤지컬 영화들이 그동안 선사했던 감격의 퍼포먼스들, 영화 이상의 종합적 엔터테인먼트의 진수를 우리나라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것이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 <구미호 가족>은 뮤지컬 영화만 시도해도 꽤 용감하다 할 만한데 거기에 도전 목표를 몇 개 더 추가한 영화이다. 뮤지컬 영화로서 영화 내에 노래가 여덟 곡 가량 들어 있는 건 물론이요, 여기에 "구미호"라는 소재가 가져오는 엽기호러스러운 면, "어리버리한 구미호"라는 설정이 가져오는 코믹스러운 면까지 더했다. 한마디로 "코믹 호러 뮤지컬"인 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영화를 하는 영화를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영화는 그만큼 결과에 있어서 가늠하기가 어렵고 호불호도 분명히 갈릴 위험도 있다. 이 영화는 과연 어떨까.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서울 한복판, 남산에 수상한 가족들이 터전을 잡는다. 바로 인간들의 간을 수집하기 위해 모인 구미호 가족. 능청스런 아버지 구미호(주현)와 남자 밝히는 첫째 구미호(박시연), 무식하지만 적극적인 둘째 구미호(하정우), 조용한 만큼 섬뜩한 막내 구미호(고주연), 이들 구미호 가족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서커스단을 가장해 남산에 천막을 짓고 인간들을 노리기 시작한다. 약 30일 뒤 다가오는 천년이 되는 그날, 인간들의 간을 먹고 진짜 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들은 솔로 구미호도 아니고 가족이니만큼 간도 하나가 아니라 네 개가 필요한 상황. 그 때 여자들 유혹에 므흣한 영상이나 찍어 돈버는 기동(박준규)이라는 사내가 이들의 수중에 걸려든다. 얼떨결에 한 집에서 반가족, 반인질처럼 지내게 된 기동은 처음엔 질겁하지만 이내 살아나갈 방법을 찾기 위해 일단 가족들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참의 의사를 보인다. 그런데 한편, 서울에서는 연이은 토막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을 맡은 형사(박철민)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들 가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구미호 가족은 과연 이 우여곡절을 거치고 무사히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배우들의 연기부터 살펴보면, 섬뜩하면서도 웃긴 캐릭터들인지라 소화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도 꽤 무난한 가운데 무식한 아들 역의 하정우의 연기가 꽤 인상적이었다. <프라하의 연인>, <용서받지 못한 자>, <시간> 등 이전 작품들에서는 진지한 성격의 캐릭터만 연기해온지라 무식한 아들이라는 전형적인 코믹 캐릭터가 어울릴까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어울렸다. 포스터에서부터 보여준 피식, 살벌한 포스가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고나 할까. 생각보다 "무식한" 포스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은근히 <안녕, 프란체스카>의 "켠"이 수준을 기대했기 때문에) 풍부한 표정연기와 종종 등장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코미디 연기에서도 손색없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구미호를 맡은 주현 씨는 예의 능글거리는 톤의 목소리로 무뚝뚝한 듯 재치 있는 대사들을 던져 묵직한 코믹 연기로 균형을 잡아주었고(그의 대사 중의 하나인 "즐거운 시간 되세요"가 영화 속에서 가장 웃기는 대사 중 하나이다), 박준규 씨 역시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와 기름진 표정 연기로 코믹스런 이미지를 이어갔다. 이번이 스크린 데뷔작인 박시연은 아직 연기보다 이미지 중심이긴 했지만 백치미가 더해진 미인 컨셉의 첫째 구미호 역을 무난하게 소화했고, 막내 구미호 역의 아역배우 고주연 양(<여선생 VS 여제자>의 이세영 양과 얼굴이 참 헷갈렸다)은 쉽지 않은 각종 아크로바트 연기와 얼음장같은 표정 연기로 유일하게 그나마 무서워보이는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와는 별개로 캐릭터들의 개성이 다소 단면적으로 펼쳐지는 점은 좀 아쉬웠다. 무식하다는 아들은 생각보다 무식한 면모를 별로 보여주지 않고, 그래서 "바보 연기"로부터 오는 웃음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제대로 무서운 뭔가를 보여줄 것 같은 막내 구미호도 살벌한 분위기이긴 하나 시종일관 "내 밥에 손대지 말라"는 소리만 해서 좀 따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대단히 재미있게 봤던 호러 코미디의 대표격 <안녕, 프란체스카>에 등장했던 캐릭터들 이상의 입체적인 개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웠다.

이제 이 영화가 새롭게 시도한 부분을 차례차례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엽기호러스러운 면, 꽤 잘 살아있는 편이다. 초반부에 토막난 시신의 일부분으로 장난을 치는 형사의 모습은 살벌한 웃음을 자아내고, 역시 초반부에 구미호 가족이 펼치는 "실제상황" 서커스("사지절단녀" 등)는 유혈낭자한 가운데에서도 우스꽝스런 몸동작과 더불어 묘한 웃음을 이끌어낸다. 이후에도 속속 등장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엽기스러운 면들-기동 앞에서 거침없는 덤블링으로 대쉬하는 첫째 구미호, 밤마다 뭔일을 하는지 남의 집 지붕 위에서 와호장룡스러운 묘기를 펼치는 막내 구미호, 자신들이 만약 인간되기에 실패했을 경우를 상상하는 가족들 등 상식 밖의 별난 행동들을 일삼는 구미호들의 엽기적인 면들이 잘 살아나 있는 편이다. 후반부 본색을 드러내는 구미호 가족들의 섬뜩한 면도 나름 잘 살아나 있는 편이다.(옛날의 <전설의 고향>이나 지금의 이 영화나 구미호가 산 사람 가슴에 손을 집어넣어 간을 꺼내는 장면은 역시나 섬뜩하다)

두번째로 코믹스러운 면. 이것도 다행히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힘입어 무난하게 살아있다. 앞서 얘기한 주현 씨의 무뚝뚝한 분위기의 코미디 연기, 박준규 씨의 능구렁이 컨셉 코미디 연기, 하정우의 희극적인 바보 컨셉 코미디 연기가 제각각의 개성을 충실히 발휘하고 있다.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없는 첫째 구미호의 초스피드 덤블링과 막내 구미호의 달밤의 지붕 체조 장면들은 다소 과장된 그래픽 사용을 통해 독특한 유머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다만, 이런 코믹스런 부분이 영화의 상황설정이나 절묘한 대사빨에서 오는 고차원의 유머라기보다는 단발적으로 나타나는 개그나 과장된 몸짓에서 오는 유머라 종종 좀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세번째로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에 대해 얘기하겠다. 바로 뮤지컬 부분이다. 사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쉬운 걸 아쉽지 않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도한 뮤지컬 장르가 그런 경우인데, 결정적으로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덟 번 가량의 뮤지컬 퍼포먼스에서는 집단이 펼치는 노래와 춤 퍼포먼스에서 느껴지는 뭔가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없다. 우선 노래가 뮤지컬 영화에서 쓰이는 노래치고는 너무 평면적이다. 진부한 구성의 곡이 될 수도 있지만, 뮤지컬 영화에 쓰이는 노래는 흔히 듣는 발라드나 댄스곡처럼 기승전결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펼쳐지는 극대화된 퍼포먼스의 크기에 관객들 역시 절로 매료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음악들은 그렇게 클래식한 구성이 아닌지라 상대적으로 뮤지컬 퍼포먼스로서의 강력한 카타르시스는 느끼기 힘들다. OST만 듣는다면 매력을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거대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와 함께 보면서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짜릿함을 느끼기에는 몇프로 부족하다는 얘기다. 정당한 비교가 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뮤지컬 퍼포먼스가 주는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따지자면 얼마 전 개봉한 <천하장사 마돈나>의 마지막 장면이 압도적이다.(물론 이전까지 전개된 이야기가 주는 감동도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배우들의 가창력이 너무 정직한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물론 배우들의 가창력이 전문 뮤지컬 배우들의 실력을 따라가기야 하늘의 별 따기지만서도, 뮤지컬에 나서는 배우들은 가수로도 손색없을 만한 평균 이상의 노래 실력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영화 속 배우들의 가창력은 너무 정직해서 파워풀한 매력은 가지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배우들이 미스캐스팅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 다만 배우들의 가창력이 조금 더 다듬어지고 기교를 어느 정도 부릴 수 있는 수준은 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싶어서 하는 얘기다. 하지만 뮤지컬 영화로서 자랑할 만한 거대하고 신비스런 분위기의 세트나, 거리에서 펼쳐지는 댄스 퍼포먼스 등은 그 중에서도 눈을 즐겁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이 영화는 세 가지 장르를 혼합하는 시도를 보였으나, 생각만큼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특히나 나는 이제까지 많이 봐 온 엽기나 코미디 부분보다는 우리나라 영화에서 쉽게 시도되지 않았던 뮤지컬 부분에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던 지라, 그 부분에서의 아쉬움이 더 크다. 하지만 괜히 채찍질을 하고 싶지는 않다. 뻔한 코미디나 멜로 영화를 찍다가 늘 지적당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도 아니요, 우리나라에선 불모지나 다름없는 장르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시행착오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미술이나 의상, 특수효과나 분장 등 신경을 쓴 구석이 영화 곳곳에 배여 있다.(컴퓨터그래픽 보완 관계로 아직 언론엔 공개되지 않고 내가 본 건 그래서 그래픽 면에서 보완이 덜 된 버전이라는 설명을 들었는데, 실은 그래픽 면에서도 어색한 면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안이한 시도에서 또 안이하게 벌어진 실수가 아니라, 꼼꼼하게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삐끗"한 것이니, 채찍질보다는 더 잘 할 수 있다는 격려가 필요할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남들이 보여준 사례가 많지 않아 더 위험할 수 있지만, 이런 새로운 시도가 없이는 영화도 그렇고 모든 예술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진보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박수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추석에 온가족이 합심해 보러 가기엔 좀 별스러운 구석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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