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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냄새와 사람냄새 극락도 살인사건
jimmani 2007-04-09 오전 2:04:40 19015   [21]


어느 장르는 만들기 쉽겠냐마는, 추리극은 특히나 머리도 많이 써야 하고 손도 많이 가야 하는 장르임에 분명하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 추리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 많은 등장인물들을 모두 한번쯤 범인으로 의심해 보게끔 만들어야 하면서도, 결말은 관객이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터뜨려야 한다. 모두를 의심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저마다 범인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을텐데도 반전은 관객들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끄집어내야 한다는 것, 이거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은 우리나라 영화에서 그동안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이 추리극 장르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살인사건이라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을연상시킬 수도 있겠지만, <살인의 추억>은 궁극적으로 추리극이라기보다는 당대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에 메스를 들이댄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극락도 살인사건>은 거창한 사회적 메시지에 집중하기보다는 일반적인 탐정소설에서 만날 법한 밀실추리극에 도전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비교적 만족스러웠다.

아시안게임으로 한창 나라 안이 어수선할 1986년 9월, 전남 목포 앞바다에서 사람의 잘린 머리가 발견된다. 그 머리는 극락도 주민의 것으로 밝혀진 가운데, 특별조사반은 극락도를 방문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지만, 놀랍게도 극락도에는 단 한 명의 주민도 남아있지 않은 가운데 영화는 사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워낙에 고립된 환경이라 바깥 세상에 대한 소식은 알 턱이 없던 극락도란 섬에는 1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순박한 주민들끼리 섬 이름처럼 천국같은 삶을 이어가지만 이것도 잠시, 어느 날 섬에 있던 두 송전기사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섬의 평화는 깨지기 시작한다. 극락도 보건소장인 제우성(박해일)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이 사건을 둘러싸고 범인 추리에 몰두하지만, 이러한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을의 시신을 하나둘 늘어가기만 한다. 외부로부터 사람이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환경. 범인은 분명 주민들 중 한 명이라는 얘긴데,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메인 포스터에는 박해일의 단독샷이 강조되어 있지만, 영화는 생각보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골고루 비중을 나눠가지고 있다. 섬 안에서 가장 가방끈이 긴 사람으로서 사건을 주도적으로 추리해나가는 보건소장 제우성을 연기한 박해일은 특유의 "선인도 악인도 아닌" 포스를 이번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낸다. 섬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며 허물없이 어울리는 모습에선 선량한 청년의 이미지가 영락없이 맞아떨어지면서도, 의문의 사건을 두고 속내를 알 수 없이 추리를 이끌어가는 모습에서는 마냥 믿고 따를 수만은 없을 것 같은 묘한 구석을 그대로 풍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완벽한 선인과 완벽한 악인이 될 수도 있는 그의 모습은 <살인의 추억>에 이어 또 한번 이러한 미스터리 스릴러에 제격인 배우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여주인공 격인 박솔미의 연기는 무난하지만, 역할의 제약 탓인지 이러한 스릴러 내지 공포 장르에서의 전형적 여주인공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듯해 아쉬움을 남겼다.

박해일과 박솔미 등의 젊은 배우 외에도 오랜 세월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해온 중견배우들의 활약도 빛난다. 유달리 숨은그림찾기에 몰두하는 한춘배 역의 성지루는 흔히 떠오르던 코믹 감초 연기에서 벗어나, 다소 단순하고 멍청해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그 안에서 제어할 수 없는 광기를 분출함으로써 웃음과 공포를 한끝 차이로 돌변시키며 영화 속에서 만만치 않은 카리스마를 자아낸다. 많은 작품을 해온 베테랑 연기자이지만 대다수에겐 여전히 "만수아빠"의 코믹한 이미지가 선명한 최주봉 씨는 이 영화에서 무언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듯한 이장 역을 연기하며 특유의 코믹함을 어느 정도 이어가면서도 그 속에 어두운 면모도 묵직하게 깔아놓음으로써 중견연기자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 밖에도 이장 아들 상구 역의 박원상, 말 한마디 없지만 포스는 누구 못지 않은 김 노인 역의 김인문, 태기 엄마 역의 유혜정, 송전기사 이씨 역의 안내상 등 골고루 비중이 분배된 중견배우들의 안정된 연기가 추리극 이외에도 영화의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이 영화는 <살인의 추억>과는 달리 현실 반영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1986년 9월 전남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설정하긴 했지만, 이러한 구체적 배경이 사회적으로 영화 속 이야기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그런 점에서 현실 반영이 충실히 되지 못했다는 단점을 안을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미스터리 추리극에 주력하기로 결심했다는 점에서 이 점이 큰 단점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과연, 영화는 목표로 한 만큼 미스터리 추리극으로서 어느 정도 안정된 면모를 보여준다.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과 17명이라는 제한적인 인원, 그 속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소재는 외국영화에선 자주 봤던 소재였을지 몰라도 우리나라 영화에선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지라 신선하게 느껴지면서도 제한된 공간과 인원 속에 펼쳐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관객들의 주의를 효과적으로 집중시킨다. 그런 가운데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성격들, 그 속에 감춰진 사연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가지를 조금씩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섬 사람들 모두가 밋밋하게 느껴지지 않고, 심지어 섬에서 가장 어린 두 아이들에게까지 어딘지 미심쩍은 눈길이 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최대한 많은 인물들에게 의심의 눈길이 가게 해야 한다는 추리극으로서의 기능에는 꽤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많은 인물들의 모습에 모두 초점을 맞추다보니 가끔은 이야기가 다소 당황스럽게 흘러간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영화는 추리극이라는 기본 얼개 안에 다양한 시도를 집어넣으며 잔재미를 준다. 살벌한 사건 와중에도 현실을 쉽게 실감하지 못하고 다소 어리바리하게 행동하는 섬 사람들의 모습은 끔찍한 상황에서도 아이러니한 유머감각을 자아낸다. 섬에 사는 한 청년에 관련된 에피소드 중에 등장한 김유정의 소설 <봄봄>을 패러디한 듯한 대목도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두드러진 재치여서 추리에만 골몰했다면 생겼을 수 있을 단조로운 분위기를 어느 정도 상쇄시켜 주었다. 또한 영화 내내 사건의 배후에도 적잖이 연관이 있을 듯한 귀신 관련 에피소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잔혹한 비주얼(<살인의 추억>은 이에 비하면 얌전하다는 생각까지 든다)과 같은 요소들은 스릴러 이외에 종종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영화스러운 효과를 꺼내들기도 한다. 이처럼 <극락도 살인사건>은 미스터리 추리극이라는 큰 얼개 안에서 전형적인 전개방식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그 안에 나름 다양한 시도를 집어넣음으로써 보다 여러 가지 맛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물론 이러한 논리로 "그럼 또 다른 다양한 시도로 왜 현실 반영 요소는 넣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굳이 이 영화도 <살인의 추억>처럼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반전을 동반한 결말도 생각보다 깔끔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의 결말은 뻔한 듯 뻔하지 않다. 한 쪽을 봤을 때는 지극히 뻔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다른 한 쪽을 봤을 때는 관객들이 생각하지 쉽지 않았을 영리한 내막을 보다 깊숙한 곳에 깔아두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내막이 펼쳐지는 결말을 보고 있을 때 그 전에 우리를 스쳐지나갔던 이야기의 전개를 곱씹어봐도, 중간중간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복선들이 꽤 설득력 있게 배열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극중에 펼쳐지는 다양한 사건들 가운데 그 연유가 깔끔하지 못하고 다소 껄쩍지근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긴 하다.(스포일러가 되므로 더 자세히는 말 못한다) 뻔한 듯 뻔하지 않은 나름의 색다른 반전을 심어놓았고, 그 복선도 되새겨보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결말은 준수하다고 할 수 있다.

정작 불만스러운 건 영화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다른 데에 있었다. 바로 영화의 음향이다. 시설이 나름대로 좋은 극장에서 영화를 봤는데,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음악이나 배경 음향효과는 사방에서 꽤 사실적으로 펼쳐지면서도 배우들의 말소리는 중앙에 다소 뭉친 듯한 느낌으로 일관되었다. 그래도 보는 데 큰 지장은 없었지만, 후반부 거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만한 부분에서 거세게 쏟아지는 입체감 있는 빗소리에 웅얼거리는 말소리가 섞여 들어가는 바람에 대체 배우들이 뭔 소리를 하는지 쉽게 알아듣기가 힘든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안 봐도 될 만한 소소한 장면이라면 몰라도, 꽤 중요한 이야기가 나왔을지도 모를 부분에서 이런 애로사항을 낳았다는 점이 많이 아쉬웠다.

<살인의 추억>을 거쳐 이번 <극락도 살인사건>에 이르면서, 한국형 미스터리 추리극이 어느 정도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듯하다. 고전적인 서양식 추리극처럼 고급스럽거나 깔끔한 분위기는 덜할지 몰라도, 이러한 한국식 추리극에는 특유의 왁자지껄한 활발함과 더불어 순박한 사람들과 살벌한 현실이 뒤엉키며 만들어내는 섬뜩한 화학작용이 꽤 수긍할 만한 공포감을 조성한다.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 같은 냉정한 사람들이 아닌 그저 인심 좋을 것만 같은 소박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참혹한 살인사건이라 그 강도가 새삼 더 충격적으로 느껴지고, 거기에 그런 소박한 사람들을 농락하는 참혹한 현실이 끼어들며 사람 냄새와 질펀한 피비린내라는, 두 가지의 대비되는 냄새를 동시에 풍기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형 추리극만의 고유한 틀을 조금씩 눈에 띄게 형성해 가는 과정에 섰고, 그 과정을 무리없이 소화해 냈다는 점에서 <극락도 살인사건>은 꽤 즐길 만한 추리극이라 해도 될 것이다.


(총 2명 참여)
rin206
영화보고나서 범인은***말하고싶어서죽는줄알았음...   
2007-04-17 10:44
time54
기묘한 느낌   
2007-04-17 10:20
kyikyiyi
보고파보고파ㅠㅠ   
2007-04-17 00:42
time54
새로운 모습의 장르라고 할까!   
2007-04-16 11:38
maker21
리뷰 잘봤습니다...^^   
2007-04-16 10:50
egg2
귀신 나와요??   
2007-04-14 02:16
mishk
진짜 무서워하면서 잘보고 나왔어요 ㅋ 정말 빗소리가 살짝만 덜했으면 확실히 알고나왔을꺼 같은 감도 없잖은데 ㅋㅋ 사운드에 주의해서 봐야하는 영화!! ㅋㅋ   
2007-04-13 23:09
gusaud99
박해일이 아니면 안되는 영화,,,ㅎㅎㅎ
다들 너무 연기도 잘하고,, 너무 무서웠고 또 너무 재밌었어요!!!
다소 잔인하고 끔찍하고 무섭긴 해도 보면 절대 후회 안할영화에요   
2007-04-13 10:52
bora2519
잘봤어요~~~무서워요 ..ㅠㅠ   
2007-04-11 00:22
jswlove1020
잘보았습니다 ^^   
2007-04-10 16:27
aragolas
이거 꼭 봐야지// 완전 기대기대~   
2007-04-10 14:46
lolekve
리뷰 잘 보았어요(^^)(__)   
2007-04-0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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