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텔톤처럼 곱고 순수한 동화작가의 삶
개인적으로 피터 래빗 캐릭터를 그다지 익숙하게 접해보지는 않았다. 영화를 통해 보면, 베아트릭스 포터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피터 래빗>을 출간하기 위해 많은 출판사를 찾아갔지만 그다지 환영 받지는 못했다. 그나마 받아 준 출판사인 ‘프레데릭 원’은 막내 동생이 처음으로 펴내는 책으로 부담 없다는 판단이 전제되어 있었다. 실제로는 어떤 출판사도 받아주지 않자 포터는 결국 1901년 자비로 2권을 소량 인쇄 했고, 생각보다 잘 팔리자 출판사와 정식 계약이 됐다고 한다. 어쨌든 포터의 책은 이 곳에서 총 23권이 출간됐고,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1억부 이상이 팔려 나갔다고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미스 포터는 1868년에 태어나 좋은 가문의 남자를 찾아 결혼을 올리는 것이 모든 여성의 당연한 현실인 시대에서 결혼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어릴 때부터 포터는 자신이 그린 동물들이 살아 숨쉬는 환상의 세계에서 그들과 어울렸다. 포터의 동화세계를 공감했던 첫 인물이 마로 출판사의 막내동생 노먼 원이었고, 이 두 사람의 우정은 아름다운 사랑으로 발전하지만, 안타까운 사고로 포터는 첫 사랑에 실패하게 된다.
영화 [미스 포터]는 마치 그림의 색채처럼 파스텔톤의 곱고 순수함이 미덕인 영화다. 이 영화는 자기가 그린 그림 속의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고 말하는 환상을 서른이 넘어서도 매일같이 보고 사는 동화작가의 열정과 로맨스를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포터는 분명 당시의 여성보다 독립적이고 진보적 의식의 여성인 듯 보이지만, 영화 전체를 통틀어 시대적인 문제라든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얘기는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 노처녀라는 이유로 친구가 된 포터와 밀리의 대화에서 남성에 의존적인 여성에 대한 문제가 건드려지기는 하지만, 그건 노처녀들의 푸념일 뿐이다. 어쩌면 그건 당시 사회의 문제를 파고 들어 영화에 어두운 그림자가 생기는 걸 기피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인 듯 싶다. 한 인터뷰에서 크리스 누난 감독은 ‘폭력과 섹스 없는 순수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역시 [꼬마 돼지 베이브] 감독이라는 게 이해되는 지점이다.
원래 케이트 블란쳇이 내정되어 있다가 일정 때문에 르네 젤위거로 바뀌었다는 포터는 영화를 보고 나니 다른 여배우가 맡는 게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100년 전의 베이트릭스 포터가 살아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평생 순수함을 간직하며 살아온 소녀적 감성을 생생하게 표현한 르네 젤위거는 현실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너무 사랑스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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