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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세며 걷는 소녀... 열세살, 수아
ldk209 2007-06-18 오후 3:44:58 1362   [17]
발걸음을 세며 걷는 소녀...

 

영화의 처음 도입부에서 수아는 숫자를 세고 있다. 바로 자신의 발걸음을.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수아의 성격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장면이라고 느꼈다. 걸으면서 발걸음을 세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 그 안정적인 구도가 깨지길 원치 않는다. 그래서 먹고 싶지도 않은데 불러 세우는 토스트집 아줌마도, 엄마와의 사회에 자꾸 들어오려는 고물상 가게 아저씨도 수아는 맘에 들지 않는다.

 

수아는 원래 밝은 아이였다. 그런 수아에게서 웃음을 뺏어가고 대신 아이같지 않은 무관심·무표정을 준 건 수아의 큰 세상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이다. 수아는 몇 년이 지난 현재까지 아버지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일기를 보고 알게 된 윤설영이 자신의 친엄마라는 비밀까지도....

 

영화는 수아가 알고 있는 비밀-친엄마가 유명 가수인 윤설영이라는-을 의도적으로 대사로서 말하지 않는다. 친구 예린의 집에서 비밀을 털어 놓는 순간은 보여주지 않고 건너 뛰며, 예린과 사이가 벌어져서 학교 날나리들에게 괴롭힘을 받을 때도 날나리들은 구체적으로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인물들의 대화가 추상적으로 비춰지기도 하고, 다들 아는데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게 과연 옳바른 방향인가 싶기도 하고(팜플렛에까지 공개된 사실을), 어쩌면 약간의 재미를 위해 스릴러적 요소를 가미하려 한 것인가 싶기도 했다. 물론 영화의 말미에 가서 왜 수아가 윤설영을 엄마로 생각하게 된 것인지에 대한 이유가 나오면서 그 의문점은 풀리는데, 과연 의도적으로 함구한 것이 의도한 만큼의 결과를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다. 어쩌면 이건 수아와 엄마의 대화 단절를 의미한다고도 보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어렵고 암담한 현실을 환상(판타지)에 의존해 견뎌 나가려는 열세살 수아의 성장 드라마다. 소녀의 성장 영화인만큼 카메라는 열세살 수아, 수아를 연기한 이세영의 몸짓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그러면서도 현실적으로 비춰주지만 보는 사람은 감성적으로 받아 들여지게 하고 있다. 수아는 불만이라고 소리내어 외쳐보지도 못하고 단지 길거리의 돌을 걷어 차듯이 뒤틀린 몸짓 한 번으로 표현할 뿐이다. 이 영화를 통해 그저 귀여움이나 발랄함을 표현하고 있는 또래의 다른 배우에 비해 가난한 단벌 소녀(그것도 칙칙한 색의)인 수아의 자연스런 몸짓을 연기한 이세영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졸업식에도 오지 않는 엄마, 자꾸 자신의 삶으로 들어오는 영표 아저씨 등 주위의 모든 것이 불만인 수아는 드디어 친엄마인 윤설영을 만나기 위해 서울행을 감행한다. 수아는 이 서울행이 자신의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아는 이 여행으로 인해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환상(판타지)이 깨지는 지점에서 비로서 현실과 마주대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인 노란 버스가 시골길을 천천히 달려 나갈 때, 창 밖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수아의 눈에 서서히 뒤로 걸어가는 아빠가 비치고, 수아는 조용히 말한다.

"아빠 안녕~~" 아빠를 보내는 아름다운 의식을 치름으로서 수아는 그렇게 더 성장해 간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아빠를 보내면서 끝냈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실 그 뒤에 사족처럼 달린 얘기는 정말 사족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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