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the Dollhouse
- 한 번쯤은 예쁜 인형들의 집에 초대 받고 싶었던 한 소녀의 절망적인 사춘기 -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과연 ‘성장’을 한 것일까? 영화를 같이 봤던 아이들 중 몇몇은 어리둥절해 하면서 싱겁게 끝났다고 푸념을 해댔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이 영화의 결말은 인정할 수 없어도 정말 현실적이다. 그래서 더 암울하다. 이 세상에서 <옥토버 스카이>처럼 성공하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그건 아주 극소수일 것이다. 우리는 돈처럼 결국은 세상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지금 내 처지를 봐도 ‘나는 성공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만 할 뿐 현실은 대학입시에 바빠서 조금이라도 도움 될 만한 것을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니고 있다. 돈도 마찬가지다. 대학입시에 도움이 되는, 무엇보다 엄마가 원하는 합창단이 되어 디즈니월드로 떠나게 된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성장’은 ‘성공’이 아니다. 그것은 ‘적응’이자 ‘체념’일 뿐이다. 결국 돈은 현실을 인정하고 남들이 하는 대로 하기에 바쁘다. 그건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돈이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에게 도망쳐서 푸른 잔디밭으로 가지만 거기에는 철조망이 쳐져있다. 강간을 하겠다면 돈을 데리고 온 공터에도 철조망이 쳐져있다. 아이들은 그 철조망 안에 갇혀서 희망을 꿈꾸지만 결국은 현실, 그 사회 속에서 의미 없이 살아갈 뿐이다.
돈은 이제까지 본 성장영화 주인공들 중에 제일 불쌍하고 가엾다. 학교에서는 같이 점심을 먹을 친구들이 없고, 집에서는 존재감이 없거나 있어도 매일 혼나기만 하는 성가신 존재다. 못생겼지만 그녀는 자신이 사랑받기를 원한다. 항상 자신보다 예쁘고 재능도 뛰어나 질투의 대상이 되었던 여동생 미시가 납치가 되자 그녀를 찾아내고 가족과 학교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받으려 한다. 이게 그냥 할리우드산 상업용 코미디였다면 그녀는 당연히 동생을 찾았고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여 갈고 닦아 꿈을 이룬다. 또한 ‘개 얼굴’이라는 추잡한 별명을 탈피하고 엄청 예쁜 퀸카가 되어서 돌아올 것이다. 어쩌면 이 쪽이 더 희망을 줄지 모른다. 나도 <금발이 너무해>를 보면서 ‘UCLA? 조금만 노력해도 들어갈 수 있겠구나’라는 허망한 꿈을 키웠다. 그러나 이 영화는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다. 오히려 더 절망적이게 돈의 존재를 부모는 깜박 잊어버린다.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고 결국 비뚤어지는 이 소녀의 이야기는 영화가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그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옥토버 스카이>는 조작 된 영화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성공하는 사람들은 정말 1%밖에 안 된다. 또 그들은 그렇게 성공했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돈과 같은 아이들은 한 학교에 한명씩은 꼭 존재한다. 그 수백만 명의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가장 가까운 예를 들으면 이 영화의 주인공 헤더 마타라조를 들 수 있다. 그녀는 영화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들을 더듬어보면 <프린세스 다이어리>나 <소로리티 보이즈>등이 생각나는데 거기서 그녀가 맡았던 역할들은 소위 ‘얼꽝녀’라 불리는 못생긴 여학생 역들이었다. 그게 현실이기 때문에 그녀는 평생 그런 역할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돈이 제일 불쌍하고 가여운 주인공이라 말했지만 돈과 같은 사람들은 정말 많다. 중학교 때도 있었고 고등학교 들어오면서도 봤다. 그들에게 동정심을 느끼곤 했지만 나도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항상 가슴이 저려온다.
결국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다. <스탠 바이 미>처럼 시체(여기서는 여동생)를 찾아내지도 못하고 <허공에의 질주>처럼 부모님에게 인정받지도 못하고 <개 같은 내 인생>처럼 주인공은 사색하면서 자신의 환경을 벗어나려 하지도 않는다. 또 <키즈 리턴>처럼 앞으로가 시작이라며 다시 희망을 다짐하지도 않다. 그녀는 이뤄낸 것도 없고 자신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아니 정확히는 순응하면서 살아간다. 그러기에 가슴이 더 미어져온다. 이제까지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영화들을 보아왔기에 다소 충격이 크다. 나는 어떠한가. 나는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영화 후반부에 나왔던 대사가 생각난다.
“오빠, 7등급이 8등급보다 좋은 거야?” “그게 그거야” “그럼 9등급은?”
그 대사를 보면서 왜 나는 욕심내어 1등이 되려고 하지 않았을 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loser는 다 loser고 underground는 underground다. 그들에게는 등급이 없다. 난 항상 중간만 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1등급이 아니면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말이다. 거기서 오빠는 고등학교 가면 나아질 거라고 한다. 나도 대학가면 나아질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사회로 나가도 경쟁사회가 될 것이라는 거고 거기서 낙오자가 되면 이미 끝이다. 내가 사회를 개혁할 것인가, 사회에 순응할 것인가의 문제로 볼 수 있지만 이 영화를 보니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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