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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두려움을 뛰어넘고 이터널 선샤인
willbefree 2007-12-08 오전 3:42:13 2059   [16]
기억 속의 먼 그대에게
 
그대는 그대인가요?
똑똑하긴 한데 교양있지 않아 가끔은 창피한,
가소롭고 비굴한 미소에 시들해져버린 그대와
기억 속의, 속의, 속ㅡ의 두근거리고 환히 빛나는 그대는 같은 사람인가요?
 
 

이별할 때 연인의 얼굴은 낯설다. 이별을 통보하는, 배신을 시인하는, 도리어 화를 내는, 그 얼굴은 사랑했던 사람의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모든 호감을 거세한 지극히 낯선 타인의 얼굴.
간혹 다투긴 해도, 조금 식었긴 해도 발렌타인 선물을 사서 클레멘타인을 찾아간 조엘은 그 낯선 얼굴을 만나게 된다.
이별이 시작된다.
'두 사람의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이별은 없다. 늘 한 쪽이 먼저 준비하고, 결심하고, 통보하면 그제서야 다른 한쪽의 이별이 시작된다.
어디선가 들었던 자동차 비유처럼 나란히 가던 두 사람 중 한쪽이 멈추면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 밖에 없는 것.
허나 사랑하던 관성은 어쩔 수 없어 한참을 더 가야지만 멈출 수 있다는 이별의 타이밍.

<이터널 선샤인>은 여자의 멈춤에 급브레이크가 걸려버린 남자의 이야기다.
기억을 지운다, 는 특별한 이야깃거리로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그것은 은유- 타인의 얼굴에서 시작된 이별을 겪어내는, 고통 속에 여자를 잊고 새로운, 그러나 새롭지 않은 사랑을 다시 시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상우(봄날은 간다)가 순진했기 때문에 저 말은 한 것을 아닐 것이다. 아직 사랑하고 있는 상우가 여자의 멈춰진 마음에 보내는 허탈한 토로일 뿐.
상우도, 여자도,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안다.

사랑은 변한다는 걸.
 
여기에 균열의 빌미가 존재한다.
사랑은 변한다, 하지만 사랑이었다. 사랑이었나?
상대는 여전히 기분에 따라 머리색을 바꾸고, 술을 좋아하고, 충동적이다. 전에는 미치게 매력적이었는데, 지금은 미치게 지겹다. 영원히 사랑스러울 거라 여겼던 그 미소도 이제는 천박해보일 뿐이다.
끔찍한 건 그렇게 변하는 내 마음이다.
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숱한 동화와 전설들로 나날이 교육받아온 우리는 혼란스러워진다. 이렇게 변하는 내 마음은 무엇인가? 사랑했던 그 때의 그 마은은? 그것들은 다 허상인가? 거짓인가? .... 착각이었나?
 
왜 사랑은 사랑대로, 변심은 변심대로 따로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다시 말하면 과거와 현재를 구분짓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물론, 인과의 끈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에 부과된 결벽적인 영속성과 순정성은 변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현재나 과거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한 때의 실수로 치부하거나 그럴리 없다고 도리질치거나.
 
드라마 '굿바이솔로'에 그런 대사가 있었다.
 
                  지금 이순간 니가 내 전부고,
                  지금 이순간 너만을 사랑하고
                  지금 이순간 미치게 사랑한다고 해야지
                  왜 건방지게 영원히를 앞에 붙여.
 
쿨한 척 하는 게 아니다. 현실이다. 안타깝지만 티없는 마음(The Spotless Mind)의 영원한 햇빛(Eternal Sunshine)같은 사랑은 없다.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만이 존재할 뿐.
계절이 바뀌듯 사랑이 끝나는 거다. 화를 낼 것도, 억울해 할 것도 없다. 그저 조금 슬프게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변심에 너그러워지고 싶다. 그래야 영원히 빛날 것 같았던 청춘의 한때를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이별 의식
 
 
조엘이 기억을 하나 둘 지우고 어떤 추억 앞에서는 머뭇거리고 끝내 도망치려 하는 것.
그건 마치 이별 후, 연인과의 추억의 물건을 한 상자 가져나와 하나씩 불태우는 이별의식과도 같다.
여기에도 아이러니는 존재한다. 지겨운 혹은 나를 지겨워하는 그녀와 끝내려하는 그 시점에, 반짝반짝 빛나는 환희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끝에서 마주하는 첫 설렘과 사랑 ㅡ 아, 그것은 왜 늘 곁에서 살아숨쉬지 않고, 내내 추억의 맨 밑바닥에서 잠자고 있다가 그제서야 나타나는 걸가.
(조엘의 기억이 역순으로 진행되어 첫만남에서 끝나는 것 또한 상자의 최근것(맨위)에서부터 점점 거꾸로 태워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와의 기억을 더듬다보면, 내가 그토록 자신없었던 건 유년의 기억 속 - 항상 바쁜 엄마에게 애정을 담뿍 받지 못해 그렇다는 것도 알게 되는데, 그 마음을 그녀와 나누었더라면 - 이렇게 끝나지는 않았을텐데 -
후회가 밀려온다. 눈물로 얼굴을 적신다. 그러나 무너져가는 기억을, 멀어져가는 그녀를 막을 수는 없다. 이미 그녀의 이별을 끝이 났다. 이제 내 차례인 것이다.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모든 잊혀져가는 것에게 뜨거운 작별인사를 하는 것.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 장면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은 다시 말하면 과거의 일이 아닌, 현실의 조엘에게 찍혀지는 방점에 다름 아니다.
모래 속에 파묻히는 것처럼 까끌까끌한 마음이지만 드디어 이별을 해 낸, 현실의 조엘.

 
 
다시 만난 그녀, 클레멘타인?
 
 
앞서도 얘기했지만 이 영화는 한 남자가 이별을 치뤄내고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그렸다고 보아지는데,
마지막에 운명처럼 다시 만난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그러하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재회가 좀 슬프면서 삐딱했었다. 기억을 지워도 감정은 지워지지 않은거라구? 만날 사람은 만나는 법 ㅡ 사랑할 사람은 온 우주가 협력하여 사랑하게 만든다구? 그럼 세월이 지난 후 그 사랑이 기억의 구석에 쳐박히게 됐을 때 자연스레 따라올 그 때의 이별은, 그것 또한 운명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건 '재회'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비슷한 타입의 남자(혹은 여자)에게 계속 끌리고, 비슷한 패턴의 연애를 계속해가는 우리들을 생각해볼 때 더욱 그렇다.
기억에 기대는 것이 아닌 감정이기에 누군가에게 '끌리게' 되는 건 사실 '취향'의 문제라 해도 무리가 없다.
첫만남부터 편안함을 느낀 조엘이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새로운' 클레멘타인에게 편안함을 느끼고 호감을 가지는 것에서
예전 연인과 비슷한 점을 가진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보통의 사람들을 발견하게된다.
그건 클레멘타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억을 삭제했다는 테잎을 돌려준 병원여직원의 행동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 때 친구들이 해주는 조언과도 같을 것이다.
너 그런 애 사귀어봤잖니, 끝에 가서 지긋지긋해했던 거 잊었어? 또 그렇게 될 거야.
 
모른 척 하려했던, 호감에 충실하려 감겨두었던 이성이 눈을 뜨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결국 뻔한 사랑의 종말을 예견할 수 밖에 없다.
사랑을 해 보았던, 이별을 치뤄내보았던 사람은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 두렵다.
 
 

 
 
영화에서 아름다웠던 또 다른 장면은 복도에서 마주하던 두 사람이 "Okay"를 연발하던 모습이다.
특히, 한없이 따뜻한 표정으로 희미하게 미소짓는 조엘(짐캐리)의 표정은 압권이다.
 
내가 지겨워질꺼야 - 괜찮아.
다시 이별하게 될꺼야 - 괜찮아.
 
두려움에 울먹이던 클레멘타인도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리고 설원 - 사랑이 시작되고 기억도 새로이 쌓이겠지, 지겨워지고 이별하고, 또 사랑이 시작될까.

영원한 햇살같은 사랑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종말 후에도 그 모든 두려움을 뛰어넘고 시작되고야 마는 사랑 - 그것이 어쩌면 사랑의 영원성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티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에는 성취된 기도와 체념된 소망이 모두 존재한다고 하니 말이다.
 
 


 

How happy is the blameless vestal's lot?
The world fogetting, by the world forget.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Each prayer accepted and each wish resigned.
 
 
Alexander Pope
 
 
 

(총 0명 참여)
thesmall
글쿤요   
2010-03-14 21:41
andre78
잘 보고 갑니다!   
2009-11-19 11:04
msjump
좋은 리뷰네요 ^^ 글 정말 잘쓰십니다   
2008-10-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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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2004,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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