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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빌리 엘리어트
asura78 2001-02-17 오후 8:14:35 2130   [4]
사랑하는 아버지께..

전 오랫동안 컴퓨터 자판을 내려다보며 무엇을 적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언제나 전 "아빠"라고 당신을 불렸지요. 지난 몇 해 동안 그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그 말이 우리의 관계에 어울리지 않고, 어린 아이가 쓰는 말처럼 민망스러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저를 부르실 때 제 이름을 부르셨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아버지의 이름을 그렇게 불러 보고 싶었지만, 전 그렇게 해 보지 못 했습니다.

발레학교에 입학한지 몇 년이 지난 지 조차 가물가물한데 이제야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따지고 보면 자발적으로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반강제적으로 (그것도 사전검열-그 당시 담임 선생님들은 우리들이 편지에 무엇 사 주세요 같은 유치한 글을 쓸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써야만 했던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언제나 아버지는 저의 편지를 보시고 '이런 글은 쓰나마나 한 글이 아니나' 같은 핀잔이라는 선물만 주셨지만 말입니다.

지금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답장을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그런 것들을 편지를 통해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전 왜 편지를 쓰지 않았던 것일까요.당신의 눈에는 이런 제가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아버지는 그럴 시간이 있으면 저에게 "연습을 더 해라"라는 말이 저에게 그런 행동을 강요했는지도 모릅니다.당신은 속으로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으면서도 제가 잘 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보고 싶어도 꾹 참고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저 또한 그 순간 내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면서 당신의 모습을 잊곤 했습니다. 그래서 전 제 손을 차마 컴퓨터 자판 위에 올려놓지 못 했습니다.어떻게 놓고 보면 이건 그냥 저만의 핑계일지도 모릅니다.하지만 전 두 번 다시 당신을 실망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제 마음속에 이런 감정이 있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저도 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던 것들을 발견한 건 불과 몇 일전의 일이니까요.이제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분이었고(어머니가 이런 소리를 들으면 삐질 지도 모르겠군요) 저 또한 아버지를 한없이 사랑했습니다. 만일 제가 당신 같은 사람이 없었더라면 전 이 자리에 서 있을 용기조차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요.

가끔 피나는 연습이 가져다 주는 피로,눈물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하지만 전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떠나는 저에게 했던 말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막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은 검게 타오른 당신의 얼굴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록 부자집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지만,그들 보다 더 큰 행복을 가졌습니다. 당신은 저를 위해 자존심 마저 버리면서,제가 하는 일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셨습니다.크리스마스 이브에 저의 춤솜씨를 보시고 기뻐하시는 당신의 모습 위에 전 실망이라는 돌을 올려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그건 아마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기특한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전 힘들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마다 걸어놓은 "약해져선 안돼,여기서 주저앉고 포기해서 안 돼"라는 주문은 언제나 친구가 되어서 이렇게 약해 빠진 저를 말없이 위로해 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제 곁에 없어도,전 더 큰 힘을 얻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기억하세요.아버지는 '발레는 게이나 하는 것이지'하고 제 마음의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발레를 하면 넌 내 아들이 아니야' 같은 소리를 하면서 저를 외면하셨지요. 저는 그때 아버지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말을 놓고 친구처럼 다정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 놓을 수 없다는 것이 저를 슬프게 했지만 전 당신이 왜 그런 말을 한 지 잘 압니다. 아버지와 똑같은 삶을 저에게까지 되물려 주고 싶지 않으신 것이겠지요.

생각해 보니, 무대에 설 수 있게 저의 뒷바라지를 해 주신(탄광 밖에 모르던 아버지가 저와 함께 오디션 시험 보러 온 그 때가 생각납니다) 당신에게 전 드릴 것이 없습니다. 또한 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싫어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이제서야 자신 있게 아버지 앞에서 당당히 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까지 합니다. 아버지가 제 모습을 보고 '장한 내 아들..' 이라는 소리를 들고 싶은 못난 자식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전 꼭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전 당신의 아들인 게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아버지도 저 같은 발레나 하는 못난 아들을 두신 게 자랑스럽나요(저 저의 이런 모습을 대견스럽기까지 하는데 말이지요) 그 대답을 이제 곧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저에게 더 큰 힘을 주곤 합니다.

얼마후 있을 공연 연습 때문에, 이 글에서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다음으로 미루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의 사랑스런 아들 빌리 엘리엇이 자신 있게 아버지에게 보여주는 지상 최대의 발레쇼에 당신을 초대합니다.(이렇게 쓰고 놓고 보니 무슨 발레 광고 같군요)

2001.1.19 빌리 엘리어트 올림

蛇足:프란체스카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같은 편지글을 쓰려고 했는데 내공이 부족한 것을 새삼 느낍니다.

(총 0명 참여)
pecker119
감사해요.   
2010-07-03 08:2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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