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까지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
가정 폭력의 가해자가 경찰인 경우에 신고 받은 경찰은 어떻게 처리할까? 일반적으로 흐지부지될 것이라 예상하기 쉽고, 그런 예상은 대체로 들어맞는다. 매 맞던 아내 마니(팜케 얀센)는 자신이 살기 위해 남편 마이크(마이클 파레)를 죽이고 감옥에 갇힌다. 모범수가 된 마니는 감옥에서 나와 100피트(30.48m) 반경으로만 움직일 수 있도록 전자 발찌가 채워진 채 가택 연금에 처하게 되는데, 남편의 파트너였던 생크스(바비 카나베일)는 마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이웃은 냉랭한 시선을 보낸다. 무엇보다 마니를 힘들게 하는 것은 집에 남아 있는 죽은 남편의 흔적들...
<100 피트>가 공포 영화로서 매력을 발휘하는 지점은 처음 마이크의 혼령이 등장하는 장면이 유일하다. 침대에 누워 담배를 피기 위해 라이터를 키는 순간 등장하는 마이크의 혼령은 화들짝 놀랄 정도로 강렬하다. 마치 죽은 자와 산 자의 중간 정도 존재인 듯한 혼령은 강렬한 첫 등장 이후 수시로 등장해 줌으로써 관객은 물론이거니와 공포를 전달해야 할 마니조차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얼마나 시답잖게 생각했으면 혼령 앞에서 보란 듯이 남자랑 섹스까지 벌일까. 물론 혼령의 반격은 꽤 강력했지만 말이다.
대부분 공포영화는 무서우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들을 하지만, 공포 영화가 다 무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담>처럼 우아할 수도 있고, <오퍼나지>처럼 슬플 수도 있다. 또는 <세브란스>처럼 웃기기도 하다. 그러나 <100 피트>는 딱 한 장면을 제외하고는 무섭지도, 우아하지도, 슬프지도, 웃기지도(다른 의미에선 웃기긴 하다) 않는다. 단지 어이가 없을 뿐이다.
대체 왜 마이크는 죽어서까지 마니를 두들겨 패고 못살게 구는 것인가?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남편을 살해하고 감옥 생활을 거쳤음에도 여전히 결혼반지를 끼고 있다는 것에서 이 영화의 구태의연함은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심지어 구타하고, 접시를 집어 던지고, 질투심에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한 남성을 잔인하게 죽이는 등 포악함을 드러내던 혼령이 반지를 건네주자 얌전히 사라져 준다. 이거 뭥미? 가정 폭력의 가해자는 대부분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노라고 항변한다는데, 마이크의 혼령도 그런 것인가? 나원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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