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연극이다"라는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우리네 삶 자체가 한 편의 연극이며, 그 연극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라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과 연극에 다른 점이 있다고 하면, 연극에는 시나리오와 각본이 다 있어서 거기에 맞추어 그대로 연기를 해야 하지만 실제의 삶에는 그런 시나리오에 의존하기 보다는 각자가 삶을 어떻게 영위하느냐에 따라서 행복해 질 수도, 불행해 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나름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은 아니다.
영화 "트루먼 쇼"는 정말 독특하고도 신기했다. 그렇지만 묘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영화이기도 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 태어날 때부터 어느 누군가에게 감시를 받는다니.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신(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하나 하나 뚫어보고 계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산다. 그러나 "감시"라는 건.. 엄연히 어감이 다르다. 신께서 나의 인생에 관여하시는 건 물론 나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실 거라는 신뢰에 기인하지만, 감시라는 건 그 단어의 어감 자체가 벌써 발목을 옭아매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답답한 느낌이다.
주인공 트루먼(짐 캐리)은 평범하게 살고 있는 한 직장인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의 삶은 그가 항상 주장하고 있는, "인생이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보험에 꼭 가입해야 한다"는 것과 딱 들어맞았다. "그의 삶은 그의 삶이 아니었다". 그의 부모님, 아내 심지어는 주변의 사람들조차도 각본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삶은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바쳐졌다. 정말 예상조차 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각본에 짜여진 삶. 그리고 거대한 세트속의 인생. 트루먼의 삶은 real life가 아니다.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이 "show"였던거다.
트루먼쇼를 보면서 참 어이없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지만, 어딘가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의 사람들 중 얼마나 자기 나름의 주관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안 나온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로부터 지배를 받는데에 익숙해져서 살고 있다. 그 지배세력이란 돈이 될 수도 있고 미디어가 될 수도 있고 대중문화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주체성을 가지고 살기 보다는 항상 어떤 테두리 속에 갇혀 그것에 세뇌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언가로부터 지배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 자신도 거기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모습은 짜여진 각본에 지배받으며 살아온 트루먼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각본이란 건 TV프로그램을 위한 것이었고, 그 프로그램은 곧 미디어의 산물이었으니까.
트루먼쇼 제작자의 말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 세상에는 진실이 없지만 내가 만든 그 곳은 다르지. 이 세상은 거짓말과 속임수 뿐이지만, 내가 만든 세상에서는 두려울 것이 없어." 그렇다면 거짓은 무엇이고, 진실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미 이 거짓이 만연된, 주입식의 사고에 길들여져 있고 그게 맞는 거라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말은 낯선 게 아니다. 그러나 감독이 말한 것처럼 그의 프로그램에는 진실이 있었을까? 애매한 질문이다. 감독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의 모습은 이미 "방송"이라는 거대한 틀에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감독은 어떤 위험한 상황이 오건 말건 방송만 생각한다. 즉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이 생기더라도 자신의 방송을 내보내는 걸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 역시 미디어의 희생자이고 눈 먼 사람이다. 결국 자기가 만든 함정에 자기가 빠진 꼴이 되어버렸다.
영화 "트루먼 쇼"는 얼핏 보면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엄청나게 공포스러운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TV프로그램으로 방송된다는 설정이란 물론 비현실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결코 트루먼의 모습은 우리와 동떨어진 모습이 아니기에 우린 그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느끼게 되고 묘한 동질감과 아찔함을 느끼게 된다. 트루먼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멘트를, 정말 우리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사는 인생속에서 활짝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싶다.
"Good morning, good afternoon and good night."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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