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여만 가는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시원한 소나기처럼 상큼함이랄까...
타인의 취향이라는 첫 작품 하나로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화려한 조명을 받기 시작한 아네스 자우이. 안타깝게도 이전 그녀의 작품을 보지 못했기에 말로만 그녀의 명성을 듣고 있던 중 이번 작품의 개봉 소식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꼽히는 타인의 취향은 얼마 안되는 상영관에서 출발했음에도 의외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었기에 이번 작품을 볼 수 있는 극장은 많지 않았어도 작품만은 충분히 기대할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는 카림과 미셸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려는 계획에서 시작합니다. 인터뷰 대상을 성공한 여성을 고르던 중 카림과 안면이 있는 아가테에게 어렵사리 동의를 구해 내죠. 그러나 인터뷰는 매번 꼬이고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마무리는 할 수 있을지조차 걱정되기에 이르게 되는데요... 그러면서 카림과 미셀, 아가테의 주변인물과의 사건들로 인해 상황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큰 줄거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보다는 부족하고 컴플렉스를 안고 사는 인물들의 관계를 따듯한 시선과 넘치는 위트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변변한 직장도 없이 삶에 질을 높이려는 카림,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허당 미셸, 인기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정치가인 아가테, 그런 아가테를 조용히 바라보다 폭발하는 연인 앙투완, 아가테의 동생은 다정한 남편 몰래 미셸과 바람을 피우며 살아갑니다.
이런 등장인물들간의 인간관계는 예상밖의 웃음을 주고 있지만 한편으론 겉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모순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지적을 합니다. 카림은 외모와는 달리 예쁜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있고 미모의 직장 동료의 연모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날카롭고 핵심을 찌르는 질문은 변변한 직업이 없는 그에 대한 속단의 실수를 꼬집고 있죠. 그런 카림이 존경하는 미셸은 이혼남이고 다큐도 제대로 찍어본 적 없는 감독입니다. 아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허풍도 치지만 금새 들통나 망신을 당하고 아들 앞에서의 촬영은 실수연발로 체면을 구기죠. 그렇지만 그의 내면에는 누구보다도 아들을 사랑하는 부성애가 있습니다. 미셸 나이 정도의 연배 정치인들로부터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아가테는 성공한 페미니스트이지만 사랑에 서툴어 평범한 여인들이 누리는 작은 행복은 맛보지 못한 아픔을 지니고 바쁘게만 살아갑니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 줍니다.
영화의 제목인 '비'는 영화 상영 시간 동안 2번 내립니다. 한번은 꼬여만 가는 상황의 극한에서 최악의 상황을 암시하는 비가 내리고 또 한번은 꼬일대로 꼬였던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상황에서의 비가 내립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간혹 비가 내립니다. 그 비가 힘든 상황에서 내리는 비로 느껴질 수도 있고 희망의상황에서 내리는 비처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내리는 비를 어떤 의미로 받아 들이는가... 이것은 결국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것이겠지요. 삭막하고 답답한 우리 가슴에 촉촉한 단비가 되어줄 이번 작품은 한편의 여유를 느끼며 마시는 와인같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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