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이발사 안창진(성지루)이 경찰서 취조실에서 자신의 이발소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진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요부끼가 다분한 보험설계사 아내 전연옥(성현아)을 끔찍이 사랑하며 3대째 가업으로 명(名) 이발관을 운영하는 안창진은 세심함과 깔끔함을 자랑으로 삼는 이발사. 그에게 ‘나는 너의 추악한 비밀을 알고 있다’는 엽서를 시작으로 정체모를 협박자 김양길(명계남)이 접근하면서 영화는 느와르의 분위기를 띄어 간다. 안창진의 실패한 원조교제의 기억을 빌미로 방문할 때 마다 두 배의 돈을 요구하는 협박자. 이를 막기 위해 사채까지 쓰게 된 안창진. 아내에게까지 추파를 던지는 김양길을 참지 못한 안창진이 해결사(이선균)를 고용, 협박자의 정체가 밝혀지는 중반부 이후 영화는 또 다른 장르로 점핑을 시도한다. 자, 도대체 그 이발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손님은 왕이다>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흔적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영화는 전달하고픈 주제인 ‘협박’의 원인과 결과를 통해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면서 중반부까지 ‘느와르’라는 장르적 재미도 놓치지 않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오기현 감독은 검은 양복과 위생복이라는 두 사람의 유니폼(!)과 이발소 바닥의 흑백 대비를 통해 협박자와 피해자의 대립을 눈에 띄게 강조한다. 이발소는 코엔 형제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를 연상시킬 만큼 느와르의 분위기를 발산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기능하는데 이는 중반부까지 안창진의 진술, 플래시백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 한정된 공간이야말로 두 인물의 대립에 관객들을 집중시키는 연극적인 효과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안창진이 진술을 끝내는 중반부 이후 궤도를 이탈해 자기 논리를 잃고 김양길의 사연에 집중한다. 이미 살해당한 김양길의 나레이션을 통해 왜 자신이 협박자가 되었는지 구구절절이 설명되는 후반부는 아쉽지만 통째가 사족처럼 보인다. ‘인생은 연극이다’를 몸소 실천한 김양길에게 감정적인 중심추가 이동, 돈 없고 불쌍한 아비이자 퇴물배우였다는 것이 폭로되는 순간 플래시백을 통한 플롯의 재배열과 무성영화 편집, 분할화면 등 각종 영화적 수식으로 포장됐던 중반부까지가 모두 지루한 프롤로그로 전락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