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후회하지 않아>에서 80년대에 유행했던 호스티스 여자와 부잣집 남자와의 사랑을 2000년대로 가져와서 파격적인 동성애를 덧입혀서 만들었던 이송희일 감독은 두번째 영화 <탈주>에서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금기시되는 소재인 '탈영'으로 과연 어떠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까? 이번에도 쿼어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지 않을까? 아니면 제목이 <탈주>이듯이 도망치는 두 남자와 잡으려는 사람들의 긴반한 추격전이 나오지는 않을까? 영화를 보기전 이런저런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후 이런 기대는 그저 나의 헛된 욕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앞서 말했듯 대한민국 쿼어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후회하지 않아> 감독의 작품이라고 해서 탈영한 두남자의 퀴어적 분위기를 기대하거나, 도망가는 자와 잡으려는 자가 너무도 분명한 '탈영'을 소재로 하였으므로 쫓고 쫓기는 긴박감 넘치는 추격전을 기대한다면 이 영화에 실망할 것이다. 물론 영화 속에 동성애와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하고, 도망치려는 주인공들과 잡으려는 군인들의 추격전도 등장하지만 그것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대신 영화 <탈주> 각기 사연을 가지고 탈영을 감행한 두남자와 그들을 돕는 한 여자의 로드무비에 가깝다. 6일이라는 도주 시간을 하루가 지날때마다 날짜로 표시하는 화면구성이나 그들을 잡으려는 사람들을 피해 전국으로 도망치는 주인공들의 도주사이에 보여주는 대한민국 자연의 모습들은 너무도 전원적이여서 흡사 그들이 여행을 가는듯한 느낌도 들게 한다.
영화는 탈영을 소재로 했음에도 탈영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영화의 시작부터 탈영에 성공한 주인공들과 그들의 잡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장탈영병의 경우 즉결사살이 가능한 이 나라 군법의 잔인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쯤되면 이송희일 감독이 전작에선 한국에서 금기시되던 동성애 문제를 드러내더니 이번에는 군대문제에 대해 드러내려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동안 한국 영화에 지금 이시대 군의 현실을 묘사한 영화는 하정우 주연의 <용서받지 못한자>밖에 없지 않은가? 이 영화조차도 개봉당시 몇몇 군 관련보수단체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했고, 여전히 군이라는 곳은 폐쇄적이고 감히 접근할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송희일 감독이라면 충분히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용기가 있어 보였고, 그래서 이 영화를 본격 군현실을 다룬 영화인가라고생각했다.
하지만 오프닝 이후 탈영한 주인공들이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슈퍼마켓에서 일을 하는 여주인공을 만난 후부터 이야기는 전혀 다른 무언가에 다가가는듯 보였다. 물론 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는 탈영한 두남자와 그들을 돕는 한 여자의 도주극이고, 그 과정에서 탈영병에 대처하는 대한민국 군인들의 자세와 관련하여 여러가지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이것은 단지 영화가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탈영병을 쫓는 군에 대한 묘사는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알겠지만 탈영병을, 그것도 무장 탈영병을 잡기위해 군당국의 추적은 매우 집요하다. 하지만 이 영화 속 군 당국의 모습에는 집요함이 보여지 않는다. 이것은 감독의 의도일수도, 아니면 턱없이 부족한 제작비 때문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송희일 감독은 탈영한 두남자의 이야기에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힘겹게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더하면서 그들의 탈주 이면에 이 시대 청춘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왜 탈영을 해야했는지, 여주인공은 대체 왜 그들을 돕는 것인지 그 이유따위는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영화제목처럼 그들의 탈주를 담담히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영화 속에서 탈주하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현실에서 탈주하고 싶은 이 시대 청춘들의 모습과 겹쳐지고, 그래서 더욱 그들의 탈주에 빠져들게 되며, 그들의 탈주가 꼭 성공하기를 바라게 된다.
이송희일 감독은 어쩌면 각기 사연을 안고 탈영을 감행한 두남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지금 현실이 죽도록 힘들도 벗어나고 싶지?탈주하고 싶지? 그런데 현실에서 탈주한다고 행복할거 같아? 라고 질문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 질문에 대한 감독 나름의 해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잔인하리만큼 정확한 묘사다. 지금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청춘들이 과연 현실을 벗어나 탈주한다고해서 행복할 수 있는가? 적어도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탈주하지 못하는한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현실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은 더 잔인하게 다가온다.이송희일 감독 참 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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