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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일상이 어쩌면 기적의 연속...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ldk209 2011-12-26 오후 3:13:06 669   [0]

 

매일의 일상이 어쩌면 기적의 연속... ★★★★

 

※ 영화의 중요한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것도 주인공의 부모는 이혼한 상태. 문득 <아무도 모른다>가 떠오르는 지점이다. 하지만 <기적>의 분위기는 <아무도 모른다>와 정반대로 활기차고 유쾌하며, 고레에다 감독이 코미디를 연출해도 충분히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엄마와 형이 살고 있는 가고시마와 아빠와 동생이 살고 있는 후쿠오카를 오가며 전개된다. 엄마(오츠카 네네)와 함께 외가집이 있는 가고시마에서 살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 코이치(마에다 코키)는 가족이 다시 모여 살기를 희망한 나머지 활화산이 폭발한다면 어쩔 수 없이 이사해 아빠, 동생과 같이 살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가진다. 그러나 동생 류(마에다 오시로)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허구한 날 부부싸움으로 시끄러운 날이 반복될 거라면 차라리 지금처럼 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형 코이치는 친구들로부터 새로 개통하는 신칸센 고속철이 서로 마주치며 지나갈 때 발생하는 엄청난 에너지 때문에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얘기를 듣고, 무모해 보이는 기차여행을 계획하고, 동생과 동생 친구들도 이 모험에 합류하게 된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만의 세계가 있다. <아무도 모른다>에서도 그렇듯,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하 <기적>)의 아이들에게도 역시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에서 아이들은 철부지 어른들을 걱정하고, 보살피며,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어른들은 ‘어린 것들이 뭘 알아?’라고 같잖게 여기지만, 자신들도 이 세계를 통과해 왔음을 잊어버린 채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적>에서의 어른들은 <아무도 모른다>에서의 어른들처럼 마냥 무책임하지는 않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꿈과 기적은 현실을 빗대 쉽게 포기하고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비슷한 입장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세계에 개입하려 하지도 않고, 오히려 묵묵히 아이들이 원하는 바를 이해해주려 하고, 도와주려 한다. 이건 어쩌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바라는 이상적 역할 모델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뻔히 꾀병인 줄 알면서 속아 넘어가주는 담임과 양호 선생님, 어처구니없는 계획의 성공을 지원하는 할아버지, 공부 때문에 밖에서 잤다는 게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엄마,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지도 모름을 알려주는 아빠 그리고 낯선 곳에서 만난 착한 어른들.

 

영화는 소소한 웃음들을 품은 채, 아이들의 꿈이 이뤄지는 마지막 여정을 향해 느리지만 정겨운 발걸음을 하나씩 옮겨 놓는다. 물론, 우리들은 아이들이 바라는 기적 중에 어떤 기적은 도저히 이루지 못할 기적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영화는 말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밋밋해 보이는 이 영화에 유일하게 마음을 흔들고 클라이맥스라고 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드디어 아이들이 목적지에 도착해 뛰는 순간부터다. 아이들이 뛰고 카메라가 뛰고, 덩달아 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까지 두둥실 뛰기 시작한다. 언제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조용하지만 폐부에 깊숙이 아로 새겨지는 인상적인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었고, <기적> 역시 예외가 아니다.

 

사실 <기적>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주인공 형제만이 아니라 친구들 한 명 한 명의 사연까지 포근히 감싸 안는다는 점일 것이다.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아이, 야구 선수가 되고 싶은 아이, 배우가 꿈인 아이, 그림을 잘 그렸으면 하는 아이, 그저 잘 달렸으면 하는 아이까지. 그런데 영화 내내 끌고 왔던 아이들의 소원 중에 어떤 아이들은 여정의 마지막에 와서야 소원을 바꿔 말한다. 여기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꿈 보다는 가족을, 더 나아가 세계를 염려한다. 소원이 바뀌었다는 건,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이해했다는 건, 이미 아이들이 성장했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아이들이 소원을 외치기 직전, 영화는 갑자기 정적과 함께 영화에 등장했던 일상의 사물들을 정지된 화면으로 보여준다. 그건 바람이고, 손짓이며, 코스모스의 씨이고, 바닥에 떨어진 동전 한 닢이다. 결단력이 없어 배우가 될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 소녀가 이 여행에 참여하기로 결단을 내린 순간, 이미 꿈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었던 것처럼, 영화는 이 마지막 장면을 통해 기적을 이루기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이미 기적은 이뤄진 것이며, 더 나아가 매일 매일의 되풀이되는 일상이 어쩌면 기적의 연속일지도 모른다고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그 정지된 화면에서 내가 느낀 건, ‘영화의 마지막에 기적이 어떻게 이뤄지나 보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영화 내내 이미 보고 있었구나’라는 것)

 

※ 이 영화가 신칸센 홍보용으로 기획되었다는 사실이 제일 놀랍다. 홍보용으로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이런 영화를 만든 감독도 대단하지만, 이런 영화를 수용한 측도 놀랍다.

 

※ 영화 포스터를 보고서야 이 영화에 나가사와 마사미가 출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호라. 웬 횡재. 비록 작은 역할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

 

※ 영화 속 형제로 출연한 마에다 코키와 마에다 오시로는 실제로도 형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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