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애니메이션은 흥행하지 못한다'

라는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뮬란>, <포카혼타스>, <아나스타샤> 정도 말고는 여자가 단독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자체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또 따지고 보면 방금 언급한 세 작품도 단독 주인공이라 하기엔 조연들의 비중이 꽤 컸고, 이들 애니메이션들이 얼마나 흥행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이번 작품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개봉전부터 꽤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과연 '픽사'는 이 징크스를 깰 수 있을까? 픽사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토이 스토리>시리즈, <몬스터 주식회사>, <라따뚜이>, <Wall E>, <업>으로 애니메이션의 질을 높여버린 바로 그 픽사의 재주꾼들이라면? 또 한 번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가족영화이나, 이 징크스를 깰 수 있을것 같지는 않다...

추석시즌 가족용 애니메이션에 이 이상 뭘 더 바래?

주인공이 있고, 성장이 있고, 감초가 있고, 선이 있고, 악이 있고, 웃음과 감동이 있는 대신 지겨움은 없다. 주인공이 대단히 매력적으로 생기지 않았다거나, 신선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사소한 점만 빼면,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전형적인 가족용 성장 애니메이션이다. 이 애니메이션에 대단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거나, 애니메이션을 보자고 징징대는 자녀 혹은 조카를 위해 영화관을 찾는 이들에게 이 작품은 오히려 흥미로울 것이다. 전형적인 이야기이나, 역시나 '픽사'의 작품인만큼, 그저 '어린아이들이나 좋아하는 유치한 장치'들로만 무장한 애니메이션은 아니니 말이다. 이 영화는 분명 충분히 만족스러운 가족 영화다.

근데 이거 진짜 '픽사' 작품 맞아?

하지만 '픽사'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한 발 더 나아가 '여 주인공 애니 징크스'까지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 작품은 조금은 충격적일 것이다. '픽사'의 재주꾼들이 누구인가? 3D 애니메이션의 기술적 진보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의 수준 자체를 높인 사람들이다. 이게 정말 아이들을 위한 만화인지 아니면 어른들을 위한 작품인지 헷갈릴 정도로 가족용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을 위해 부모님이 시간이 내어주는 애니메이션'을 넘어 '가족 구성원 전부가 저마다 재미있고 의미있는 부분을 찾아내어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그 재주꾼들이 야심차게 만들어낸 작품이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내용의 전개, 캐릭터들 간의 상호작용, 개별 캐릭터가 갖고 있는 생명력... 분명 위 단락에서 서술한대로 충분히 만족스럽다. 가족 애니메이션이니까. 하지만 '픽사'의 이름에 기대하는 '가족 애니메이션'에서는 상당히 동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은 다른 스튜디오의 작품들과는 차별돼 왔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적어도 '픽사'라는 이름에 많은 기대를 거는 이들에게는...

그래도 다행이다. 그냥 가족 애니메이션으로는 훌륭해서^^

'픽사' 이름에 거는 기대네 뭐네 하며 부정적으로 내뱉은 말들이 조금 길어졌지만,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추석에 어린아이들과 함께 보기에 충분히, 아주 충분히 만족스러운 가족 애니메이션이다. 기대란건 결국 소비자 쪽에서 일방적으로 키워버린 허상에 불과하니까. '픽사 애니메이션'이라는 거창한 이름 말고 '가족 애니메이션'이라는 카테고리를 즐기러 가는 마음으로 영화관에 들어간다면, 이 작품은 분명히 즐거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중박'이 없어진게 아쉽다.. 이 영화는 대박도 아니고 쪽박도 아닌데...... 그러니 긍적적 마인드로 '대박'을 선택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