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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목]누구든 살고 싶게, 누구든 포기하지 않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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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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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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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06 오전 5:4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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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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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글을 쓰려고 했을때 아주 현실적이고 위험한 전형들을 통해 삶에 있어서 사랑의 허구와 실재를 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가급적 삶과 연루되지 않는, 관능적이고 부유하는 사랑을 미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쾌락과 감상과 욕망의 비루함과 가벼움과 무상한 환멸을 기록하게 되었으니 사랑이 왜 지리멸렬한 삶의 가랭이를 벌리고 그 살점 속에 뿌리를 박아 서로의 악성 종양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숙고하게 되었다."
영화 밀애의 원작 "내생에꼭하루뿐일아주특별한날"의 작가 전경린씨가 원작에 남긴 후기중 일부분이다.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물론, "삶과연루되지 않는..."이다. 원작이 갖고 있는 치열함은 아름답다. 작가가 의도한 "미화"와는 전혀무관한 "Reality" 때문에 작품은 아름답다. 결국, 작가는 삶과 연루되지 않은...사랑의 "판타지"를 그리고 싶었으나 도착한곳은 현실뿐이다.(소설과 영화의 결말 또한,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현실뿐이어서 그것뿐이어서, 실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쁘고 황홀하다. 미흔의 가정이 분열되고 인규(이종원)를 만나면서 그녀의 여름이 바빠지는 순간(그녀의 정신과 육체 모두.)우리(독자+관객)는 온몸으로 일제히 열광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것이 도착하는 종착지가 남루한 현실 뿐이라 할지라도 미흔의 여름을 우린 이해하고 동경한다.(당신이 그녀의 여름,을 비판하든 동경하든 그것은 온전한 개인의 선택이다.)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풍부한 묘사력과 유독 깊은 "삶에대한집착"은 전경린 소설의 근간이며 실체다. 당신이, 원작에 반한 전경린의 대단한 애독자이든 원작을 사보지도 읽어보지도 않은 그러니까. 원작과는 전혀 무관한 오직 "노출"에 대한 궁금증으로 부풀어 오른 김윤진의 혹은 벗은여배우들의 팬이든 그것은 관계없다. 왜냐하면 영화 "밀애"는 이 두가지 부류의 관객들의 호기심을 마음껏 채워주고도 남을 에너지를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밀애는 원작의 내용을 착하게(?) 따른다. 도입부과 엔딩을 나래이션으로 진행시킨것에서 이미. 영화는 원작을 거스를 의도따위는 전혀 품고있지 않고 있음을 선언한다.
영화에서 눈여겨 볼부분은 두가지이다. 쉬고 있었던 미흔의 육체와 정신이 분주해지기 시작하는 여름날의 시작. 뜨거운 태양아래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녀의 뇌와 육체. 그 두가지다. 그러니까. 남편의 여자가 둔기와 의도성 없던 칼로 내리쳐 터진 그녀의 뇌에서 나온 핏자국으로 인해 멈춰버린 미흔의 뇌가 길 한복판에 멈춰서버린 그녀의 차에 기름을 넣어주며 등장한 인규의 첫등장과 같이...인규로 인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뇌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정신은 깨어 일어난다. 굳어있던 육체는 인간을 원하고 사랑을 원하기 시작한다. 인규가 제안한건 "사랑한다는 말을 먼저하는 사람이 패한다"는 게임이었지만 사실상 이 게임은 영화의 맥락상 중요한 단서가 아니다. 중요한건 인규가 미흔의 차에 넣어준 기름으로 인해 미흔의 차가 움직이기 시작한것처럼 미흔을 움직이게 만든건 바로 인규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다시한번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원작에서 미흔의 남편 효경의 역할이 존재하는 것과 달리 영화 밀애에서 효경은 축소되어 있다. 즉 감독 변영주가 말하고자 하는 미흔의 남자는 효경이 아닌 인규. 인규와 미흔과의 관계부각이다. 미흔이 외도를 하는것에 부정적인 시선을 두는 자세는 밀애를 보는데 불필요한 자세다. 멈춰버린 한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존재에게 외도따위를 논할필요는 없다. 오히려, 인규를 만나기전에 뇌사상태였던 미흔을 내리친 칼보다 더 잔인한 남편 효경의 "전과"에 주목해야 한다. 이유는, 효경에게 복수하기 위함 혹은, 그에 맞먹는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미흔이 인규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남편 효경이 휘두른 과도(그것은 분명 그의 그녀가 아닌 그가 휘두른 것이다. 그게 옳다.) 인해 멈춰버린 정신과 육체가 생명을 얻어 미흔은 움직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수개월간 멈춰서있던 젊은 미흔에게 살고자 하는 욕망과 섹스하고자 하는 욕망과 움직이고자 하는 욕망을 불어넣어준 건 잘못을 저지른 효경이 결코 될 수가 없다는 사실. 그렇기에 인규의 존재는 소중하며 그것은 복수를 위한 불륜이 될 수 없다는 사실. 이것은 영화 밀애를 읽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코드이다. 이 사실을 오인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밀애의 은밀한 정사의 긴장감을 결코 제대로 즐길 수 없다. 즐길 수 없는 순간 모든 것은 시시해질것이고 당신에게 미흔의 슬픔은 결코 전달될 수 없다. 죽어있던 육체가 부활하고 멈춰버렸던 뇌가 움직이고 뇌를 가득채웠던 두통은 사라진다. 미흔에게 인규는 '부정의대상'이 아닌 '생명'이고 '호흡'이다. 어떤 경우에도 멈춰버린 인간의 장기를 움직이고 뇌를 가득채우고 있는 두통을 치유해줄수 있는 것은 남편 효경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사람들은 죽을지도 모르는 목숨을 걸고 왜 저런위험한짓을 할까...등신같애...당신 죽어버리지 그랬어 그럼 나도 따라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이젠 안돼 옛날로 돌아갈수가 없어 그런데 나는 왜 이집에서 니옆에서 붙어 살고 있을까. 삶이 참 하찮아....너무나 하찮아...마음을 누를 무언가가 없으니깐 정말 사는게 거지같애..." 라고 되뇌였던 미흔의 얼굴에서 흐르던 뜨거운 눈물을 말끔이 닦아 내준 건 효경이 아닌 인규다. 그녀에게 남편 효경은 이미, 그녀가 말한것처럼 '하찮은존재'로 전락해버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미 그전에 그녀가 효경에게 '하찮아'졌던 것처럼....그렇게.
미흔과 인규의 정사씬은 역동적이다. 노출부위의 범위(?)와 무관하게 정사장면은 역동적이다. 여기서 역동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이유는 물론 조명과 음악 그리고 카메라의 유려한 움직임 때문이다. 무겁고 슬픈 첼로연주가 시작되면 조명은 색채를 머금고 두사람의 벗은몸을 멋지게 조율해준다. 클로즈업되는 미흔의 얼굴에는 생명력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두사람이 하나가 된 순간 이후에 나오는 대사들은 생생하다. 밀애의 모든 대사들이 그렇듯 삶과 밀접하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물들의 대화내용은 역시 전경린의 소설들이 그러하듯 결코 냉소적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냉소적이기 보다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애닲은 감정이 지배적이다. 약속이라는건 바다위의 부표같은것처럼 그렇게 대충어디쯤 떠도는것이지 결코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하는 인규조차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이것은 게임을 제시했던 인규의 내면의 실체가 아닐까.)미흔과 같은 차를 타고 같은 도로를 달리고 있지 않은가. 영화속 모든 인물들은 결코 냉소적일수 없다. 전경린소설의 모든 인물들은 살기 싫어 하면서도 살고 싶어 하며 더욱더 간절히 살기를 원한다. 결국 삶에 대한 질긴 집착. 그건 애달플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산다는건...누구에게나 너무나 힘든일이기에....
영화 밀애는 깊은 감수성과 놀라운 묘사력의 원작을 멋지게 살려냈다. 누구나 그러하듯 전경린의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비쥬얼과 밀애는 많은 부분 일치한다.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미세한 부분의 수정작업(인규의 직업 변화, 효경의 역할 축소, 인규의 죽음...등등)을 통하여 소설이 영상화 되기 위해 갖추어야 될 필요한 요소들을 알맞게 갖추어 내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밀애를 이해하기 위한 두가지 코드들을 익숙하게 소화해낸 당신에게 밀애는 진정 촉촉하고 끈끈한 그러면서도 색다른 멜로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주인공 미흔의 정체성을 자문하는 과정에서 만난 인규에 대한 추억은 뜨거운 햇살아래 날아 다니는 파리만도 못한 작고 짧은 시간이었을런지도 모르겠으나...인규의 존재는 미흔의 불안정한 삶을 색다른 장소에 안착하게 만들어준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고장난 미흔의 차를 움직여준 인규의 기름처럼...말이다. 불륜을 조명한 화끈한 멜로영화 한편을 기대하고 극장안에 들어온 관객들에게 밀애는 일순간의 재미와 다른 묵직한 과제를 던져준다. 그것은 감독이 원작자가 관객과 독자와 나누고 싶어 하는 진지한 대화이다. 작품을 지탱해주는 두배우의 연기는 뛰어나진 않지만 결코 모자르지 않다. 밀애를 데뷔 극영화로 선택한 변영주의 선택의 사유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만큼 변영주의 연출력은 유려하다. 미흔의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창밖의 인규의 얼굴. 그리고 다음씬으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미흔의 인규를 쫓는 빗속의 추격씬. 섹스가 아닌 낯선장소에서 만나 나누는 대화로 충분할수 없는 두사람의 관계를 묘사한 호프집에서의 호프집내부의 두사람과 화장실의 미흔의 얼굴로 이어지는 씬등은.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졌기에 가능했던 세밀하고 유연한 아름다움과 역동성을 함께 갖춘 멋진 장면이다.(물론 가장 빛을 발하는 그녀의 연출력은 아름답고 슬픈 정사장면이다.)
밀애는, TV불륜재연드라마가 아니다. 밀애는, 사랑의 본질과 인간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누구든 살고 싶게 하며, 누구든 포기하지 않게 하는, 삶의 원동력으로 재탄생 되어진, 고급멜로드라마다.
"당신은 멈춰버린 뇌와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끊임없는 두통을 소유하고 누군가에게 아무런 의미없는 하찮은 존재로 살아갈것입니까. 아니면 싸구려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이른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일용직 근로자로 하루하루를 자신의 뚜렷한 존재를 깨달아가며 살아가겠습니까?"
물론 선택은 온전한 당신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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