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에서만 맛볼 수 있다 환상엽기발랄 어덜트 판타지
영화<대학로에서 매춘하다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이하 ‘대학로’)로 남기웅 만의 독특한 영화관이 대중에게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그 새로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독특함 그 자체로 <대학로>에 매료된 관객은 매니아를 자처하며 남기웅 감독 작품에 대해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매번 놀라운 시도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매니아마저 당혹케 하는 남기웅 감독이 이번에 또 큰일을 저질렀다.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가 표방하고 나선 ‘환상엽기발랄 어덜트 판타지’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매 연출작마다 성에 대한 남다른 세계관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내용을 전반에 내세운 남기웅 감독은 특유의 무한한 상상력을 남성들의 섹스판타지에 녹아냈다. 애인과의 사이에 별다른 진전도 없이 끌려 다니기만 하는 건태는 여자친구의 종용에 의해 자신의 성기에 총을 이식하게 된다. 정액이 곧 총알, 사정하면 총이 발사되는 구조인 성기총은 자신을 억눌렀던 문제를 해결하게 함으로써 구원이 된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쾌락을 느끼고 싶지만 사정하는 순간 살인무기가 되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구속하는 속박물이 되고 만다. 동네 건달인 힘줄 삼형제 중 한명에게 강간을 당한 후 그들에게 돈벌이 목적으로 사이보그 창녀로 개조된 향수. 처음 건달을 만난 그날부터 사이보그가 된 이후에도 그녀에게 섹스는 쾌락을 느낄 수 없는 무감각한, 일종의 노동일뿐이다. 그녀가 품은 감정은 오직 자신을 그렇게 만든 힘줄 삼형제에게 복수를 감행하는 것뿐. 이후 복수의 화신이 된 향수는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친구인 건태를 이용한다. 패륜 아버지로 인하여 왜곡된 성 정체성을 가진 교사 미미. 그녀는 짝사랑하던 남학생에게 섹스를 하자며 애걸복걸하고 피곤하다는 학생은 마지못해 관계를 가진다. 관계 후에 돌아가려는 학생에게 단지 자존심이 상한다는 이유로 열대만 맞고 가라며 강요하는 모습은 뒤틀린 사랑을 추구하는 섹스의 화신으로서 미미의 모습을 극대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에서 그려지는 다양한 캐릭터에 부여되는 각각의 성 정체성은 현대 인간 내면의 모순과 비뚤어진 욕망을 관통한다. 특히 남기웅 감독 특유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유쾌함은 상징적 의미의 메시지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가 집착하는 세 가지 ; 설화, 성기, 철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지만 여러모로 <대학로>를 연상하게 한다. 설화에서 가져온 모티브와 사이보그로의 개조, 이미 <대학로>에서도 사용되어 화제가 되었던 성기총의 재등장이 그 근거다. 하지만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에서는 그 표현 수위가 상당히 높아졌고 화면과 내러티브는 훨씬 정교해졌다. 남기웅 감독 본인도 <대학로>와의 연관성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설화나 성기, 그리고 철의 이미지는 사실 남기웅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지배적 코드이기 때문이다. 남기웅 감독을 세상에 처음 알린 작품 <강철>에도 오이디푸스 신화가 참조되었고 성기가 등장하며 주인공은 철로 된 갑옷을 입고 있다. <우렁각시>나 <준비된 악당은 속도가 다르다> 역시 설화와 총(철)을 끌어들이고 있다.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엔 두 가지 설화가 나온다. 우리나라 대표적 설화로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실려 있는 ‘효성깊은 호랑이’가 그 첫 번째고 두 번째는 “견훤 설화”이다. 그리고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는 복수극의 외형을 띄고 있는데 그 복수의 계기는 여주인공인 향수의 성기에서, 실행은 남자주인공인 건태의 성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두 성기 모두 각자의 몸에 철로 이식되어 진다. 영화에서 철의 구체화 된 상징은 바로 총이다. 성기는 철의 반대 개념으로 태초에 인간이 태어난 그곳, 즉 인간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즉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에 등장하는 성기총은 생명의 잉태라는 가장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상실감을 표현하는 매개체이며 성기총이라는 상징으로서 인간의 금지된 욕망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조금 강한 설정이구나 싶은 수준이지만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의 설정은 더 깊이 들어간다. 남자 주인공인 건태는 홀어머니와 살고 있다. 아동심리학에서는 아버지가 없는 경우 특히 아들들은 어머니의 속박이라는 그늘 때문에 가족으로부터의 고립되게 된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렇게 고립되는 아들을 자신에게서 떠나보내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오히려 자신의 아들을 거세시키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의 시작이 한 어머니가 자기 아들의 성기를 자르는 것이란 사실을 통해 우리는 이 영화가 '거세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인물들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에 등장하는 설화는 왜 하필 ‘효성 깊은 호랑이’였을까?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효행비에는 대개 설화가 얽혀있다. 누군가가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서 상을 내린다는 게 효행비의 의미는 효도를 행하면 사회적 보상을 받는다는 공식으로 사회구성원들에게 작용한다. 물론 효란 존경받아야 할 일이지만 이것에 사회적 보상이 따르는 순간 효는 단순한 존경의 대상에서 유교가 사회구성원들에게 강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다. 이렇듯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는 효성 깊은 호랑이 설화를 통해 개인이나 가족이 아닌 사회라는 큰 틀 속에서 이 사회의 강요되는 이데올로기와 그 안에 내포된 부정적인 집단 무의식과 삭막하기만한 현대사회에서 고통 받는 인간의 자화상을 다양한 상징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감독의 깊은 의도가 엿보이는 영화다.
전래동화와 설화의 절묘한 조화 <효성 깊은 호랑이><견훤설화>의 모티브 도입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는 남기웅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감독 특유의 엽기 발랄함이 기대되는 작품으로, 감독이 오래 전부터 애착을 보여 왔던 설화가 녹아있다. 전작인 세네프 영화제(SENEF)의 3인 3색 <쇼 미>의 옴니버스 작품 <준비된 악당은 속도가 다르다>에서 전통설화인 혹부리 영감을 모티브로 했고, 이번에는 전래동화 ‘호랑이 형님’과 ‘견훤설화’가 바로 그것이다.
#1. 효성 깊은 호랑이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던 나무꾼이 산 속에서 호랑이를 만나자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꾀를 내서 갑자기 “형님, 어릴 때 숲 속에서 잃어버렸다는 분이 바로 형님이시군요.”라고 기지를 발휘하고, 그 말을 믿은 호랑이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산돼지를 잡아 나무꾼의 집 앞에 가져다 놓는다. 이 점을 착안한 남기웅 감독은 영화에 적용하여 기태가 건태모를 위해 멧돼지, 물고기 등에 이어 옛 여자친구의 동생인 정자의 시체까지 선물로 드리는 장면을 설정, 남기웅 감독 특유의 코믹함을 엿 볼 수 있다.
#2. 견훤설화 옛날 어느 귀족의 한사람에게 예쁜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입을 다물고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의 아버지가 자꾸 캐묻자 며칠 전부터 새벽녘에 너무나 잘생긴 남자가 그의 방으로 몰래 들어와 몸을 맡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그 사내가 오늘밤에도 찾아올 것이라고 하자 부모는 딸에게 꾀를 한 가지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바로 바늘에 실을 꿰어 그 남자가 돌아갈 때에 옷자락에 살짝 매어두는 것. 다음날 실을 따라가 뜰로 나가보았더니 옆구리에 금빛 띠를 두른 큰 뱀이 바늘에 찔려 누워있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딸은 임신하여 마침내 남자아이를 낳았다는데 그가 바로 백제를 부활시킨 견훤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밤마다 딸의 방의 기웃거리고 홀연히 사라지는 아버지를 찾고자 하는 장면에서 사용되었다. 볼일을 끝내고 사라질 때 옷에 실을 꿰어 그 행적을 쫓는 장면은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주요장면으로 사용되어 한층 흥미를 높이고 있다.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존재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 그 의미
인간은 항상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에 휩싸여 있는 존재이다. 가지고 싶은 물건을 손에 쥐더라도 그 소유의 기쁨은 잠시, 조금만 지나면 또 다른 물건에 대한 욕망이 생겨난다. 그 욕망은 단순히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것에 대한 욕구로 시작하지만 그 욕구는 곧 순수한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물신주의적인 욕망으로 바뀌게 된다. 사실 이 때쯤 되면 자신의 욕구를 잊어버리고 순전히 새로운 소유욕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요즘 세대가 흔히 우스갯소리처럼 사용하는 ‘지름신’ 이라는 단어에는 현대인들이 빠져있는 욕망의 아이러니가 담뿍 배어있다. 꼭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도 좋다. 소유의 기쁨과 환희는 곧 더 큰 무언가를 위한 더 큰 욕망으로 변하게 된다.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는 이처럼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현대인의 삶을 말하려 하는 영화다.
<대학로>에서 이미 확인했듯, 남기웅 감독의 영화의 특색은 제목에서부터 구분이 된다. <대학로>외에도 남기웅 감독이 연출했던 영화들을 살펴보면 단편 옴니버스 영화<쇼 미 - 준비된 악당은 속도가 다르다><우렁각시>등 그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단어의 조합에서 남기웅 감독 특유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찾아낼 수 있다.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도 예외가 아니어서 삼거리는 주인공 건태의 우유부단한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동시에 삼거리가 풍기는 비주류의 이미지를 차용, 소외된 인간 군상을 대표하는 뜻을 담고 있다. ‘괴력을 지닌 차’ 라는 뜻인 머슬카의 대표로 꾸준히 군림하고 있는 포드의 소형 스포츠카인 머스탱(mustang)은 출고 당시부터 지금까지 감각적인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 머스탱이라는 자동차는 영화에서는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는 주인공 건태가 여자를 안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즉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동경의 대상으로 함축되어 표현되었다. 구체적인 나이가 언급되지 않은 주인공 건태는 대략 20대의 나이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를 소년으로 규정지은 것은 자신의 신체조차 스스로 제어할 수 없어, 쾌락을 즐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과 타인에게 조종된다는 뜻에서 성숙하지 않은 미완의 어른이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이미 삼거리 에서 차용된 의미의 강화된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유별난 것처럼 보이는 제목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며 수많은 것들을 상징한다.
상실에 대한 아픔… 무너져 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 진화하는 캐릭터를 모두 만난다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는 한 소년이 자신을 괴롭히던 무리들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잃은 후 상실감으로 절망을 느낀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데 과거, 현재를 생각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는 바로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상실 이후에 비로소 주변을 돌아본 소년은 인간은 누구나 본연의 모습을 숨긴 채 나름의 삶을 영위해 간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런 그의 눈에 비친 다양한 군상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처럼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유부단하며 아웃사이더의 대표격인 건태는 돈 못 벌어온다고 엄마에게 구박받고, 무능력하다고 애인에게 따귀나 맞는다. 그런 그의 신체에 거대한 무기를 장착함으로써 새롭게 태어난다. 건태는 우연히 만난 호랑이 기태로부터 목숨을 건지기 위해 어릴 적 헤어진 형님이라고 거짓말로 둘러댄다. 하지만 알고 보면 기태는 개를 무서워하는 순진한 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 기태는 건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간 제대로 모시지 못한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멧돼지며 물고기 꾸러미며 심지어 동생 건태의 신부감까지 구해다 온다. 어머니를 위해 건태와 꾸민 일로 인하여 정체성이 뒤바뀌는 사건이 발생하지만 끝까지 건태에게 죄의식을 느끼며 책임을 다하는 순수하면서도 엽기적인 캐릭터이다. 평범한 고등학생에서 피치 못할 일로 자신의 신체를 사이보그로 개조하게 된 향수는 사랑을 부정하고 이용하며 복수를 꿈꾼다. 상대가 누구건 자신의 복수에 이용하는 차가운 캐릭터는 자신의 모든 복수를 끝내고 평범한 여자로 돌아가기를 꿈꾼다. 선생님이면서 학생을 사랑하는 섹스의 화신 미미, 남편이 호랑이인지 개인지 그 정체가 모호하면서 돈 만 밝히는 건태의 어머니, 동네 건달로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 모든 사건의 온상인 힘줄 삼형제-서부영화 광인 첫째와 둘째는 게이, 막내는 관음증 환자이다. 원하는 모든 것은 다 만들어 줄 수 있는 기이한 인물로 주요 캐릭터의 신체적 변화를 위해 수술을 감행하는 닥터 헬 까지 모두.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의 모든 캐릭터는 ‘나는 누구인가’를 화두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캐릭터는 때론 진화한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 채 가면을 쓰고 상대방을 대하듯 무엇도 스스로의 모습을 액면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에서는 가면을 걷어낸 다양한 인간 군상 본연의 모습을 험악한 모습의 동물이나 현재를 부정하는 사이보그라는 아이콘으로 형상화해냈으며 이러한 다양한 캐릭터들은 내 안에 숨겨져 있는 실제의 모습을 발견하라는 남기웅 감독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하지만 남기웅 감독은 특유의 유쾌한 상상력으로 결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풀려나가며 강한 메시지 뿐 아니라 보고 즐기는 영화로서의 미덕 또한 놓치지 않았다.
오직<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에서만 볼 수 있다 영화를 설명해주는 키포인트; 블랙과 가죽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속의 시공간은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규정되어있지 않다. 얼핏 현시대의 모습과 비슷하긴 하지만 호랑이 형님의 등장은 과거의 모습을 띄고 있고, 사이보그 창녀의 존재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표현하는 아이콘이 된다. 또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인 듯 했던 에피소드는 현재의 사건에 자연스럽게 연결 된다. 영화의 공간 역시 시간과 마찬가지로 각 공간들의 관계가 특별히 규정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전혀 별개의 공간들끼리 녹아나고 있다. 규정되지 않은 것은 시공간뿐이 아니다.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에서 만나는 캐릭터는 모두 정형화되지 않은,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상상 속의 인물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본성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런 모호한 시공간과 캐릭터의 특성을 살리며 스토리를 매끄럽게 끌어가가기 위해 이 영화가 선택한 가장 큰 장치는 바로 의상이다. 제작진은 어찌 보면 비현실적이고 난해할 수 있는 스토리를 관객에게 명확히 전달하기엔 블랙톤의 의상과 가죽 소재가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의상팀이 바로 제작에 들어갔다. 여기서 현실적인 인물은 블랙톤의 의상이더라도 그 소재는 자유롭고 현실적인 이미지를 나타내도록 준비하였고, 비현실적인 인물은 광택이 도는 가죽 소재를 채택하여 냉정함과 이지적인 느낌, 동시에 사이버틱한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였다. 사건 발단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 향수는 힘줄 삼형제에 의해 사이보그 창녀 향기로 개조된다. 이후 힘줄 삼형제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죽은 후 닥터 헬에 의해 사이보그 향수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모두 3번의 진화를 거듭한다. 향수에게 필요한 의상은 총 세벌. 평범한 여고생을 표현하기 위해서 교복을 택했고, 사이보그 창녀 향기는 속이 훤히 들어나는 망사 원피스를 통해 섹시함을 강조하였다. 복수의 화신이 되어 돌아온 사이보그 향수는 가죽 원피스로 차가움과 기계적인 이미지를 대변하였다. 평범한 학생 신분의 의상이었던 교복을 제외하고, 사이보그로서의 그녀는 모든 의상의 색깔을 차갑고 사이버틱한 느낌이 강한 블랙톤으로 꾸몄다. 비현실적인 인물 중 과거를 대표하는 호랑이 형님 기태. 검은 코트를 휘날리며 호랑이 특유의 위풍당당함을 풍기지만 닥터 헬에 의해서 개로 재탄생한 기태는 피트되는 블랙 가죽 의상과 블랙 망토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고 방황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비열하지만 엉뚱한 모습에서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인 힘줄 삼형제는 동네 사람들을 괴롭히며 온갖 나쁜짓만 하고 다니는 동네 건달이다. 이들 삼형제는 마치 영화<맨인블랙>을 연상시키는 블랙 정장을 통해 조직폭력배의 분위기를 한껏 풍기고 있다. 화장을 완벽히 마치고 본인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낀 이후에야 비로소 수술을 시작하는 닥터 헬은 죽은 생명도 다시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극중 인물들의 진화를 직접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밝게 탈색한 머리에 대비되는 블랙톤의 가죽의상으로 그 캐릭터에 걸맞는 신비하면서도 음침한 모습을 한껏 표현해냈다.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에서만 볼 수 있다 화려한 미장센과 독특한 소품
어덜트 판타지라는 장르와 남기웅 감독의 만남에서 이미 예견되었듯이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에서는 온갖 새로움이 난무한다. 그렇기에 영화에 필요한 소품 또한 온통 새로운 것들. 너무나 색다른 시도라 시나리오를 처음 접한 미술 감독조차 어리둥절케 했던 소품인 ‘성기총’. 미술 컨셉회의를 시작으로 촬영을 시작한 9월까지 사전준비기간만 한달을 꼬박 소요하여 만든 이 ‘물건’은 사람의 몸에 직접 부착하여야 한다는 것과 무기로서의 기능적인 면까지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사람의 신체 모양과 가장 흡사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채택된 플라스틱으로 외형을, 무기로서의 기능을 더하기 위해 내형은 금속으로 실제로 총이 발사가 되도록 설계되었다. 촬영 내내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출연한 기태는 섬세한 표정연기까지 훌륭히 소화해냈다. 오랜 기간 쌓아온 탁월한 연기실력도 한몫했지만 특수 분장팀에서 제작한 맞춤형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의 미세한 연기까지 모두 감상하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기태를 연기한 김병춘의 얼굴에 맞게 특수 실리콘으로 맞춤 제작하고 리얼리티를 위해 촬영이 있을 때마다 새롭게 제작하였다. 미미의 아버지를 쫓는 건태의 추적씬은 ‘견훤 설화’에 등장한 실타래를 모티브로 사용되었다. 볼일을 끝내고 실을 꿴 미미와 함께 사라진 아버지를 쫓으려 실타래를 찾아 나선 건태. 미미 방을 시작으로 한 실은 골목을 지나 큰길을 가로질러 건널목을 건너서 가게를 관통하더니 화장실 창문을 지나 심지어 자전거 바퀴살 사이까지 관통되어 있다. 팽팽하게 연결된 실의 종착지는 바로 지하 보일러실. 설화의 도입과 미로와 같이 복잡한 캐릭터들의 심리를 설명하는데 있어 더없이 확실한 느낌을 살린 실타래는 드라마<야인시대> 세트장과 부천시청 지하 보일러실에 연결하는데만 한나절이 꼬박 소요되었다. 모든 촬영을 무사히 마친 후 복잡한 실타래는 전 스탭이 커팅식(?)으로 끝을 내는 등 유쾌한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하였다. 기이한 외모와 행동으로 기괴함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 닥터 헬. 그는 죽은 생명도 살리고 태생조차 바꿔주는 미스테리한 박사이다. 닥터 헬이 구조변경을 위한 설계나 수술이 진행되는 밀실은 그의 심리를 포착, 기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청계천을 뒤져서 찾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기계들과 신비로운 소품들로 가득하다. 가장 중요한 수술실은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수술의 특성을 살려 아기가 처음 태어나는 산부인과 수술대를 설치하였다. 전체적인 컬러는 음울하지만 신비로운 느낌이 도는 블루그린 톤을 사용하여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밖에 사이보그 향수의 충전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충전기와 섹스카, 버려진 버스를 리모델링 하여 만든 기태의 집 등은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를 빛내주는 특수소품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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