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으로 평단에게 주목 받기 시작한 프랑스 감독 미셸 공드리가 이번에는 만화적 상상력과 코미디를 결합하여 신년 한국 극장가를 찾아온다. 미국 개봉 첫 주 당시 9위에 랭크된 이 영화는 오락성과 감수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추구하는 영화다.
사양산업군에 속하는 직종인 비디오대여점을 운영하는 플래처(대니 글로버)가 가게를 잠시 비울 일이 생긴다. 종업원 마이크(모스 데프)에게 가게 영업을 잠시 맡기는 대신 전제조건을 하나 단다. 마이크의 친구인 트러블메이커 제리(잭 블랙)를 가게 안으로 들이지 말라는 조건이다. 플래처가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어서인지, 사고뭉치 제리는 야밤에 발전소를 파괴하려다가 도리어 감전사고를 당하고 인간 자석이 되고 만다. 자성(磁性)으로 플래처의 대여점 비디오테이프들을 모조리 공테이프로 만들어버린 제리. 마이크와 제리는 궁여지책으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대여점의 영화들을 자체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이들의 자체제작 영화는 의외로 고객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는다.
영화는 크게 세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공테이프 대신 다른 영상을 만들기 위해 벌이는 영화 자체제작 해프닝과 저작권침해로 곤경에 빠지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 추억을 영상으로 간직하고자 하는 마이크와 제리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의기투합. 영화를 자체 제작하는 해프닝 과정에서 언급되는 영화들은 <러시아워 2><고스트 버스터즈><라이온 킹><로보캅><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등 숱한 영화들을 망라한다. 이들 영화를 기존에 접했던 관객이 각 영화 시퀀스 가운데 어느 부분을 건드리는가를 관찰하지 못하면 각 영화 속 대사의 참맛을 우려내지 못할 수도 있다. 마이크와 제리라는 두 엉뚱콤비가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허접함과 코믹함을 동시에 아우른다.
제리가 발전소에 감전됨으로 자성을 지닌다는 설정과 소금물을 한 양동이 들이키고 오바이트하는 설정은 만화적 상상력에 기인한다. 하지만 영화는 기존의 헐리우드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익살맞게 묘사하는 것에만 치중하지는 않는다. 영화 후반부는 맨 처음 시퀀스와 수미쌍관법(首尾雙關法)으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다. 스윙 재즈의 대가 팻츠 월러의 연대기를 흑백화면으로 잠깐 동안 언급하지만 영화 중반부까지는 팻츠 월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의 흐름을 지닌다. 후반부와 긴밀하게 연결되기에 그렇다. 그리고 팻츠 월러에 대한 이 지역 사람들의 향수는 영화 초반 마이크의 발언에 기인한다.
도시재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철거될 운명을 맞은 대여점은 팻츠 월러의 추억과 맞물리면서 영화는 새로운 방향점을 맞는다. 추억을 간직하기 위한 지역 사람들의 일심협동으로 일궈내는 영화 후반부 시퀀스는, 그간 영화라는 매체가 인터넷과는 틀리게 소비자와 상호관계를 구축하지 못하는 일방향성 매체의 성격을 수정 가능케 만든다. 팻츠 월러의 추억을 영상으로 만들어가는 작업에 있어서 마이크와 제리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일심단결하여 영화를 제작한다는 양방향성 지향은, 영상산업에 있어 마을 사람들이 소비 뿐 아니라 (소비의 모습은 영화 중반부까지 대여점에서 비디오를 대여해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볼 수 있다) 적극적인 생산작업을 통한 상호관계성을 구축함을 보여준다.
정작 이 영화의 저력은 제리의 코믹한 시츄에이션보다 영화 마지막 시퀀스에 있다. 도시재개발과 팻츠 월러의 추억이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제작되는 영상과 긴밀하게 결합되지 못했다면 영화 후반부는 결코 훈훈하게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사양산업도 그렇고 도시재개발도 그렇고 새로운 것이 다가 아니다. 옛 것은 팍팍하고 미래지향적인 마인드에 뒤쳐지는 구시대적 발상이 아니라 온고지신(溫故知新)임을 영화는 잔잔하면서도 감성적인 어조로 말하고 있다.
2008년 12월 31일 수요일 | 글_박정환 객원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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