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초, 대한민국 서울에 김태평이 있었다. 현빈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김태평은 유명세를 뒤로하고 군대에 가야 했다. 대한민국 남자에게 군대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짊어진 운명이었다.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끝의 말로는 대부분 비참했다. 현빈은 ‘꼼수’따윈 부리지 않았다. 그냥 현역으로 입대해도 박수 받았을 일이었다. 홍보병으로 가도 뭐라 할 사람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귀신도 잡는다는 해병대에 지원했다. 현빈은 그곳에서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보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싶다고도 했다. 연예인 특혜 없이 남자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군복무를 하기에, 외부로부터의 과도한 관심을 차단하고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해병대가 나을 거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태평 이병의 기대는 군입대 순간부터 어그러졌다.
캡틴 아메리카와 현빈은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예민한 온도차가 존재한다. 스티브에게 군대는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홍보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그를 영창에 넣을 사람은 없다. 원한다면, 일상생활로의 복귀도 가능하다. 반면 현빈에게 해병대는 선택이지만, 군대는 의무다. 2년이라는 시간동안 현빈의 시간은 국가에 예속된다. 대한민국 군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곳이 군대’라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최근 일부 연예인들은 군대를 이미지 재정립을 위한 전략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착실하게 군복무 하는 모습은 대중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다. ‘군필자’라는 수식어가 인기 보증수표처럼 사용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현빈과 같은 톱스타의 경우,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현빈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스티브 로저스에겐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그는 홍보 요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스스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원하는 자리에서, 원하는 싸움을 했다. 하지만 현빈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좁다. 최근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현빈의 상병 진급 때, 자대를 해병대 사령부로 바꾸고 모병 홍보병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투병을 홍보병처럼 대한다’는 논란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겠다는 의미다. 일부에서는 캡틴 아메리카를 시대착오적인 영웅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 현재 대한민국에 득실거린다. 한 개인의 선택과 의지를 국가라는 이름으로 제한하는 거야 말로 얼마나 시대를 역행하는 일인가. <시크릿가든> 속 주원(현빈)의 말을 떠올려야 할 때다. 이게 정말 최선입니까?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