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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안내! 남 일이 아니다. 미국의 보험제도를 화끈하게 두들겨 패는 마이클 무어의 <식코> 들춰보기!
식코 | 2008년 4월 3일 목요일 | 하성태 기자 이메일


너무 뻔해 하품이 나올 지경인 얘기부터 해 보자. 인간은 누구에게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이건 대한민국 헌법 10조에도 나와 있다. 또 넉넉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도와주는 건 예로부터 ‘인지상정’이라 했다. 굳이 ‘평등’의 개념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충분하다.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5천명을 공평히 먹였던 예수의 기적. 대한민국의 수많은 교회가 무용지물이 아니라면 ‘오병이어’의 현재적 가르침은 바로 저 ‘행복 추구권’과 ‘평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뻔한 얘기를 들먹인 것은 바로 다큐멘터리 <식코> 때문이다. ‘환자, 앓는 이’란 뜻의 <식코>는 좌파 선동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가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화제작이다. 왜 화제작이냐고? 이번에도 총기사건이나 부시 행정부, 9/11 테러 이야기냐고? 그럴 리가,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반대파를 끌어들일 정도로 영악한 감독이다. 그건 <식코> 의 말미, 자신의 최대 안티사이트 ‘Moore Watch.com’의 운영자 아내가 병에 걸렸고, 보험료가 없어 사이트가 폐쇄될 지경에 이르자 보험료를 대신 내줬다고 밝힌 대목에서도 알 수 있다. 안티팬의 보험료를 대신 내주는 이 아이러니, <식코>는 이렇게 미국의 기형적인 의료보험체계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힐러리의 의료보험 정책에 대한 지원사격?

오바마와 힐러리의 대결이 연일 재미를 더해 가는 올 미국 대선에서도 의료보험체계는 최대 화두 중 하나로 떠올랐다. 경제와 이라크 문제와 더불어 오랜동안 대기업 중심으로 민영화되어 있는 의료보험 시스템에 미국 국민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이클 무어는 확실히 좋게 말하면 선견지명을 가진, 나쁘게 말하면 두뇌 회전 속도가 일반인들의 두 배에 달하는 감독이라 할 수 있다. <식코>에서 마이클 무어는 ‘섹시한’ 힐러리가 클린턴 시절 ‘건강보험계획’의 입안을 추진하다 공화당과 보험 업계의 반대와 로비에 밀려 좌초한 과거를 여지없이 들춰낸다.

하지만 제약회사와 보험업계, 그리고 이들의 로비를 받은 정치인들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미 의료보험제도의 역사는 닉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2월 17일, “그딴 의료 정책에 관심도 없던” 부통령 닉슨은 카이저 종신 보험의 “적은 돈의 지출로 더 많은 돈의 수입”을 모토로 하는 기업화 정책 제안을 받아들인다. 물론 그 다음날 공식 발표에서는 “세계 최상의 보건 정책”으로 둔갑해 버리지만. ‘악동’ 무어는 이를 놓치지 않고 녹취 테잎과 흑백의 뉴스릴을 통해 생생하게 까발린다.

마이클 무어가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직설화법으로 두들겨 패는 문제점은 바로 전국민 대상 의료보험제도가 없다는 점이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이?’라고 반문할 이들이한 둘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어는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릭을 통해 잘린 두 손가락에서 6만 달러짜리 중지와 만 2천만 달러짜리 약지 중 ‘더 값싼’ 약지를 선택해야 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고 고백한다. 이게 다 ‘이 죽일 놈의 보험’ 때문이다. 무어는 <식코>가 대략 3억의 인구 중 보험에 들었기에 안전하다고 느끼는 2억 5천만 미 국민들을 위한 영화라 주장한다. 국가가 개입하는 정책은 ‘사회주의적’이라고 교육받고, 공교육은 당연하지만 생명과 직결된 의료 시스템은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 되어야 한다고 믿어온 바로 그들 말이다.

매해 1만 8천명이 보험이 없어서 사망하는 나라, 파산의 50%가 의료비용으로 발생하는 것도 모자라 파산 신청자의 3/4가 의료보험을 든 사람인 나라, 연간 약 2조 달러, 1인당 약 7천 달러를 쓰는 나라. “이 환자로 돈을 벌 수 있을 까가 아니라 어떻게 환자를 낫게 해주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응급실에 들어갔을 때 ‘잠깐, 누가 이 돈을 내지’를 먼저 생각하고, ‘보험카드는요? 누가 데려왔죠?’를 첫 질문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도와드릴까요?’가 되어야한다”는 마이클 무어 말이 상식이 아닌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더불어 마이클 무어는 130일의 촬영 기간 중 캐나다와 영국, 프랑스를 둘러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른바 ‘비교체험 극과 극’ 정도랄까. 우선 우리의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와 달리 미국과 인접한 캐나다는 미국인들이 의료보험을 위해 결혼할 사람을 찾는 사이트가 운영중일 정도다(그리고 친절하게도(?) 무어는 이 사이트의 주소를 엔딩 크레딧 중간에 실어 놓았다.) 영국은 또 어떤가. 무어는 1948년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 일찌감치 전국민 의료보험보장 제도를 실천한 나라로 소개한다. 바로 ‘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 돈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마인드. 정부가 의료복지를 서서히 없앤다고 발표한다면 혁명이 일어날 나라가 바로 영국인 것이다. 프랑스에 다다르면 무어의 질투심(?)은 극에 달한다. 각종 유급휴직도 모자라 정부에서 가사 도우미를 파견하는 나라, 미국의 ‘911’과 같은 24시간 의료체계가 무상으로 운영되는 프랑스의 실상을 의구심 많은 마이클 무어는 프랑스에 사는 미국인들에게 직접 청취한다.

사실 이렇게나 구구절절하게 <식코>의 전개 과정을 설명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마이클 무어가 대상에 접근하는 방식이 변화했다는 것, 그리고 새정부 들어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우리 의료보험 시스템에 대한 경각심 때문이다.

좀 더 진중해진 마이클 무어의 직설화법

마이클 무어는 전작 <볼링 포 콜럼바인>과 <화씨 9/11>을 통해 총기에 무분별하게 노출된 미국사회, 그리고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 행정부를 비판하면서 전세계인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시의적절하면서 유머와 독설을 동시에 구사하는 그의 화법이 찬반을 불러일으켰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식코>는 <마이클 무어 뒤짚어보기>라는 안티 다큐멘터리가 나올 정도였던 그가 변화하고 있음을,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도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독설은 줄었고, 유머 또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비아냥은 자제했으며, 무엇보다 좀 더 적확하고 폭넓은 인터뷰 등을 통해 대상에 진실하게 접근하자고 하는 노력이 도드라진다.

“사실 의료보험은 좀 더 큰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우린 인간으로서 도대체 누구인가. 왜 서구사회에서 우리만 무료 의료보장제도가 없는가. 이건 남에게 자비를 베푸는 거 아니라 자신과 우리 아이들을 위한 거다.” 이러한 목소리는 영화의 말미, 그가 취재했던 환자들을 데리고 쿠바로 향할 때 극에 달한다. 사실 시작은 전례가 없는 최고의 무상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는, 빈 라덴의 수하 등 테러리스트들을 수용하는 관타나모 만 해군기지로 향할 생각이었다. “악당들과 똑같이만 해 달라”는 외침, 이건 지극히 ‘쇼’를 의식하는 무어다운 발상이다. 하지만 당연하게 쇼는 거절당하고 무어는 일행을 데리고 쿠바로 향한다. 혹시나 찾아간 약국에서 미국에서는 120달러인 흡입기를 5달러에 살 수 있는 아이러니. 악마 ‘카스트로’가 살고 있다고 교육받은 쿠바에서 일행은 고향에서는 꿈도 못 꿨을 친절한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눈물을 흘린다. 이것이 무어의 영화를 위한 계산일지라도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릴 때, <식코>의 주제의식은 그 어떤 수단도 이겨낼 힘을 지닌다. 이념적으로 명확한 적에게 겨냥하는 총성이 아니라 미국의 한 국민으로서 사회를 돌아보는 진중한 성찰. “이 영화로 작은 불씨를 태워서 실제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행동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인터뷰가 거짓이 아님을 <식코>는 충분히 증명해 낸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닥쳐올 재앙에 대한 경고

아이러니하게도 마이클 무어의 모든 다큐멘터리는 항상 한국 사회를 떠올리게 했다. 대기업과 노조, 그리고 지역 사회의 문제를 다뤘던 <로저와 나>와 이라크전 파병에 동참했던 우리나라에서도 다큐 사상 최고의 관객을 동원했던 <화씨 9/11>이 대표적이다. 더욱더 <식코>는 당면한 과제에 대한 통찰을 선사한다. 좋은 다큐멘터리가 미시사와 비정치적인 것을 통해 역사와 정치를 이끌어낸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라크 파병이 국민 개개인과 상관없다고,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이들이라면 <식코>는 거의 공포영화 수준이다.

영원한 우방 미국보다 쿠바의 영아사망률이 낮으며 평균 수명도 길다는 사실은 단적인 예일 뿐이다. 돈이 없는 위급 환자를 이웃 병원에 내다 버리는 미국의 현실은 어쩌면 수 년 안에 도래할 우리의 미래일지 모른다. 이명박 시대, 출범 초기부터 거론된 당연지정제 폐지는 그 신호탄이다. 상위 몇 퍼센트를 위한 의료서비스가 부지불식간에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그것도 모자라 외국계 민간보험들이 세 불리기에 성공하고 있는 지금. <식코>는 ‘대한민국의 의료보험체계는 이대로 괜찮은 가’에 대한 의식과 당연지정제 폐지가 불러 올 재앙을 경고하는 ‘내일뉴스’ 그 자체다. 더불어 마이클 무어의 말처럼 “금요일 밤 극장에서 웃고, 울며 볼 수 있는” 쉬우면서도 냉철한 교과서다.

2008년 4월 3일 목요일 | 글_하성태 기자(무비스트)




-마이클 무어 팬이라면 당연 ‘무브! 무브!’
-좀 더 진중해진 무어의 화법이 대중성을 업그레이드시키다.
-그럼에도 왠만한 코미디 영화 능가하는 그의 유머는 여전하다.
-영화가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믿는 당신.
-‘우방미국 불신지옥’ 이라는 당신!
-토요일날 다큐보며 데이트할 수는 없잖아.
-설마, 이미 어둠의 경로에서 봐 버렸다고?
26 )
ldk209
의료보험 민영화..... 이래도 도입할래????   
2008-04-04 09:37
drjed
이영화 보자는 운동도 확산되고 있던데여.. 마이클 무어의 비판의식이 좋아서 볼 예정   
2008-04-0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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