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해외 출장을 가는 그녀(임수정)와 아내를 공항까지 바래다주는 그(현빈). 자동차 안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한다. 출장에서 돌아온 후 이들은 함께 이삿짐을 싼다. 그녀는 화 한 번 안내고 자신을 도와주는 그를 보며, 화가 치밀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이 때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마을 근교 다리가 잠겼다는 뉴스가 나온다. 이로 인해 마지막 만찬을 시내 레스토랑에서 먹기로 했던 약속도, 이사 계획도 모두 취소된다. 그러던 중 비를 피하기 위해 고양이가 집안으로 들어오고, 그들은 같이 고양이를 찾기 시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별이란 종착역으로 향해 천천히 달려가는 기차와 같다. 갑작스러운 ‘이별행’ 기차에 올라탄 두 주인공은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런 와중에 간간이 사랑의 감정이 남아있는 간이역에 정차하고, 잠깐 같은 추억을 곱씹는다. 무덤덤할 것 같던 이들의 마음을 살며시 열어젖히는 건 추억 속에 숨겨져 있었던 사랑의 감정. 자신들에게 없어진 줄 알았던 그 감정이 다시 샘솟는 찰나, 이들은 기차의 종착역이 이별이라는 현실을 직시한다.
<여자, 정혜> <멋진 하루>를 통해 다른 멜로 영화와 차별화된 작품을 연이어 내놓은 이윤기 감독은 이번에도 여성감독들보다 더 섬세한 디테일이란 자신만의 장기를 발휘한다. <여자, 정혜>에서 속눈썹이 떨어지는 것까지 세세하게 담아냈던 디테일은 이번 영화에서 더 심화됐다. 이별을 앞두고 있는 부부의 심리를 따라가는 영화는 좀처럼 두 인물의 감정변화를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미로 속에 갇힌 듯 이별의 아픔과 괴로움을 찾아볼 수 없다. 감독은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대신 그들의 추억이 배어 있는 사물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그와 그녀가 책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던 파스타 요리책, 그가 그녀에게 선물한 목각 인형 등은 그들의 잠자고 있던, 웅크렸던 감정을 일깨운다.
유일한 공간인 집과 계속해서 쏟아지는 비는 사랑과 이별의 갈림길에서 마주하고 있는 두 인물의 심리 변화를 대변한다. 이들은 거실을 제외하고 각자 다른 층에 작업실을 갖고 있다. 그녀의 작업실인 2층 서재는 책들이 정리되면서 차가운 이별의 느낌을 주고, 그의 작업실인 지하실은 없어진 줄만 알았던 추억의 물건들이 발견되면서 따뜻한 사랑의 느낌을 전한다. 여기에 멈추지 않는 빗줄기는 집밖으로 나갈 수 없는 제약을 주는 동시에 조금씩 변화를 겪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10분 동안 펼쳐지는 자동차 안 롱테이크 장면은 핸드 헬드를 통해 두 인물의 모습을 비추며 이별의 궤적을 담아낸다. 그러나 축축한 비가 주는 무거운 분위기와 함께 극적인 장면 없이 묵묵히 흘러가는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감상하기 쉽지 않다. 우정출연 한 김지수의 푼수 연기가 낮게 내리 앉은 분위기를 환기시키지만, 그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영화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현빈과 임수정의 연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각 드라마 <시크릿 가든>과 <김종욱 찾기>에서 보여줬던 인물과는 확연히 다르고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감정을 표출할 분출구 없이도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감성을 보여주는 이들의 연기는 영화의 숨은 원동력이다.
2011년 2월 28일 월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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