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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막에 일렁이는 사랑의 재즈
리빙 하바나 | 2002년 2월 6일 수요일 | 우진 이메일

작년이었던가, 체 게바라의 고향으로만 인식되던 낯선 나라 쿠바에서 [브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건너왔던 때가. 한 눈에도 삶의 애환이 거뭇하게 묻어나는 어르신네들. 그들이 피워 올리던 넉넉하고 소탈한 음악의 아지랑이는 내 머리 속을 이글대던 '혁명의 쿠바'를 풀썩 덮어버리기에 충분했고.

그 흐뭇한 음악의 약효에 여적 비틀거리다 또 다른 쿠바산 음악을 만났다. 영화의 탈을 쓰고 은막을 통해 풀려난 음악 뭉치, [리빙 하바나]. 이 영화는 현존하는 재즈 트럼펫터 아투로 산도발의 망명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앤디 가르시아는 주인공 아투로 산도발 역을 위해 엄청난 체중을 늘리는 수고를 감수했다고. (이 사실을 차마 모르고 영화를 감상할 적 불룩하게 나온 그의 아저씨 뱃살 털럭댈 때마다 함께 출렁이는 가슴 연신 쓸어 내리며 '앤디 가르시아도 많이 늙었네' 쓰디쓰게 질겅거렸다만, 그럼에도 앤디 가르시아의 짙은 눈빛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아무래도 음악이다. 귀에 착착 달라붙는 감미로운 음악은 단순한 조미료 역할을 넘어 스크린 구석구석을 누비고, 영화 전체를 휘저어 놓는다. 끈적하게 온 몸을 휘감다가도 한 순간 사르륵 스쳐버릴 것 같은 재즈 선율에 귀 기울이는 일은 마치 꼬리 한 가닥 지상에 늘어뜨린 채 공중에서 너울대는 연을 바라보는 것처럼 조마조마한 설레임을 가져다준다.

영화가 그려내는 아투로 산도발의 족적은 어쩌면 재즈의 느낌과 닮아있다. 카스트로 정권 하의 쿠바가 그에게 가했던 은근한 압력. 발목을 조여오는 불합리한 정치적 무게를 탈탈 털어내고 훌훌 완전한 음악의 세계로 나부끼길 원하는 그의 영혼이야말로 자유를 갈망하는 재즈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끝내 망명을 감행하는 아투로 산도발의 고달픈 여정은 아슬아슬하면서도 팽팽한 재즈 리듬과 묘하게 맞물리며 가슴을 저릿저릿 울린다.

하지만 자유와 구속, 이상과 현실의 기로에 선 그에게 가장 큰 굴레로 다가왔던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으니. 우리는 정치적 신념이 확고한 아투로 산도발의 연인 마리아 넬라에게서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권력의 허상을, 그녀로 인해 갈등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자유와 사랑이라는 인간 근본의 가치들이 충돌하는 부조리한 상황의 모순을 읽을 수 있다. 즉, 영화는 한 개인의 내면 갈등과 극복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비틀린 역사에 대한 비판 의식 또한 놓치지 않는다.

[리빙 하바나]는 탄탄한 드라마와 애잔한 영상을 훌륭한 음악으로 조물조물 버무린 작품이다. 주연 앤디 가르시아는 아투로 산도발의 자유를 향해, 음악을 향해 휘몰아치는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충분히 담아내고(살찌운 노력만 해도 가상하다) 미아 마에스트로 또한 당당하고 굳은 듯한 외면 속에 감추어진 얇고 가녀린 내면을 표현하는 데 충실하다.

어쨌든, 이 영화 뭐니뭐니해도 '음악 영화'임에 틀림없다. 두 시간동안 이국적인 재즈 가락에 흥건히 젖어 흐물흐물하게 녹아있던 관객이라면 머리 위에 불이 켜진 후, 마음 추슬러 레코드 가게로 직행할 지 모를 일이다. 삶의 질곡 속으로 귀환하기 전 몽롱한 재즈 한 꺼풀로 무장하려.

3 )
ejin4rang
재즈가 아름다워요   
2008-10-16 16:26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8:17
kangwondo77
리뷰 잘 봤어요..좋은 글 감사해요..   
2007-04-2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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