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30-50클럽이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의 조건을 만족하는 국가를 가리키는 용어다. 현재 30-50클럽에 가입된 국가는 일본(1992), 미국(1996), 영국(2004), 독일(2004), 프랑스(2004), 이탈리아(2005), 한국(2019) 등 7개국에 불과하다.
2018년 통계청 기준 한국 1인당 GDP는 약 34,000달러였고, OECD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구매력평가(PPP Purchasing Power Parity) 1인당 GDP는 한국 42, 136달러로 일본의 41,502달러를 이미 추월했다. 즉 한국은 절대적인 수치로만 본다면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기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그 풍요로움을 체감하고 있을까. 양적 팽창과 더불어 정신적인 만족을 누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오히려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이를 보며 부러움을 느끼고 나아가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순간을 맛보기도 한다.
이는 비단 한국 사회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현상이요,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볼 문제도 아니다. 내가 가진 것 이상의 것을 꿈꾸고 이를 향해 매진하는 목표지향적인 태도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타인을 향한 부러움이 건강한 자극을 넘어 질투로 변모하고 결국은 자신의 영혼을 공격하는 독으로 작용할 때 우리는 어느 새 ‘나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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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증후군(Ripley Syndrome)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는 동시에 스스로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인격장애이다. 소위 ‘허언증’으로 조롱받곤 하는 병리현상이다.
부러움에 잠식당한 나머지 병이 돼 버린 이들을 소설, 영화 등 콘텐츠 속은 물론 현실에서도 꽤 종종 접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변모해 온 콘텐츠 속 ‘리플리’들을 만나보자.
그 처음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발표한 연작소설 ‘재능있는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 속 주인공 ‘톰 리플리’다. 20대 중반의 고아인 그는 절도와 남 흉내 내기가 특기요. 어떤 일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전형적인 악인이다. 그는 부자 아버지를 둔 덕분에 무위도식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친구를 죽이고 신분을 위조해 그 친구 행세를 하면서 산다.
소설 속 ‘리플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생긴 남자’라는 타이틀을 반세기쯤 달고 산 원조 미남 배우 프랑스 출신 ‘알랭 들롱’의 대표작 <태양은 가득히>(1960)로 재탄생했다.
프랑스 거장 르네 끌레망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톰’이 고등학교 동창이자 방탕한 부잣집 아들인 친구 ‘필립’(모리스 로네)의 아버지의 제안에 따라 친구의 괄시와 하인 취급을 당하면서도 뒤치닥거리를 해주다 결국엔 그 선을 넘어버리고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린다. 니노 로타의 감미로운 음악과 항해에 나선 젊은이들을 비추는 강렬한 태양 아래 선과 악 사이 갈등하는 인물의 모습을 또렷하게 새긴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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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잉글리시 페이션트>(1996)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안소니 밍겔라가 ‘리플리’에 주목한다.
<콜드 마운틴>(2003) 각본과 연출,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2008)과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 등의 제작에 참여한 그는 <굿 윌 헌팅>(1997)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등으로 존재감 알린 맷 데이먼을 새로운 ‘리플리’로 낙점해 당시 잘 나가던 기네스 펠트로와 주드 로 등 화려한 라인업을 꾸려 고전을 변주한다.
밤에는 피아노 조율사, 낮에는 호텔 보이로 일하는 ‘리플리’를 내세운 영화는 원작의 큰 틀을 유지한다. 손 닿을 수 없는 세계를 우연히 접하게 된 후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결국은 파멸의 길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당시 핫한 배우들과 함께 스타일리시하게 재탄생 시킨다. 맷 데이먼이 보이는 살벌하게 비열한 연기와 주드 로의 절정(?)에 다다른 외모가 관람 포인트다.
2020년 3월 2일 월요일 | 글 박은영 기자(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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