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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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하야카와 치에
배우: 스즈키 유이, 이시다 히카리, 릴리 프랭키, 카와이 유미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시간: 120분
개봉: 4월 22일
간단평
죽은 ‘나’가 남은 가족을 지켜본다는 내용의 작문을 쓴 후키는 담임 선생님이 우려 섞인 상담을 요청할 만큼 독특한 감수성을 지닌 소녀다. 1980년의 여름, 11살 후키의 가족은 유난히 위태로운 계절을 지나고 있다. 아빠는 암 투병 끝에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엄마는 직장에서 부당한 이유로 한직으로 밀려나 억지 연수를 견디는 중이다.
부재와 상실의 기운이 감도는 빈집을 지키며 후키는 홀로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유영한다. 영어 회화를 배우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평범한 일상부터, 폰팅이라는 금기된 어른의 세계를 엿보는 발칙한 일탈까지 후키의 여름은 지루하면서도 다채로운 빛깔로 채워진다. 그러다 문득 르누아르의 그림(이렌 캉 당베르 양의 초상화) 속 소녀와 마주하며 낯선 호기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야윈 몸과 달리 배만 부풀어 가는 아빠와 조직내 불합리에 맞선 엄마, 그리고 혼자만의 성장통을 앓는 후키까지. 세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치열함으로 생의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다.
근 미래 초고령 사회의 비정한 단면을 날카롭게 직시했던 <플랜 75>의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두 번째 장편 <르누아르>로 돌아왔다. 전작이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날카롭게 다뤘다면, 이번 작품은 1980년대라는 과거의 시간을 빌려 한 가족의 ‘뜨거운 시간’을 관조적이고도 면밀하게 추적한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감정의 과잉 없는 담백한 화법에 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빠라는 비극적 설정을 두고도 영화는 값싼 눈물이나 슬픔의 호소에 함몰되지 않는다. 더불어 아이를 마냥 순수하게 보호받아야 할 성역으로 보지 않고, 어른과 대등한 고민을 짊어진 인격체로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을 견지한다. 이 담백한 서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배우들의 눈부신 앙상블이다. 후키 역의 스즈키 유이는 어리지만 단단한 얼굴로 흔들리는 세계를 지탱하는 소녀의 내면을 완벽하게 형상화했다. 여기에 삶의 끝자락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아빠 역의 릴리 프랭키와 방황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내는 엄마 역의 이시다 히카리가 합을 맞춰 깊은 정서적 울림을 전한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의 이름에서 따온 제목인 ‘르누아르’에 대해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관객이 원하는 대로 느끼고 해석하길 바란다. 오해해도 괜찮다”면서도 “영화의 스토리와 크게 상관 없는 제목”이라고 밝힌 바 있다. 누구나 거쳐 왔을 그 시절의 공기를 품은 <르누아르>는 상처를 딛고 내일로 한 발짝 나아가는 전진의 에너지를 차분히 전한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단순히 80년대의 풍경을 세련되게 복원했기 때문이 아니다.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이별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결국 다시 일어설 용기를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길어 올리기 때문이다.
2026년 4월 24일 금요일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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