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조화일까. 갑자기 제목에 "피아니스트"가 붙은 영화들이 세 편이나 개봉을 한단다. 한편은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라고 약간 변화를 주었지만 나머지 두 편은 제목도 똑같이 <피아니스트>다. 세 작품은 제목 때문에라도 서로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정보를 구해보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영화가 무슨 영화인지도 헷갈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세 작품의 차이는 무엇이고, 어떤 영화를 봐야 할 것인지, 그 차이를 짚어주기 위해 친절한 무비스트가 네티즌들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피아니스트의 전설(La Leggenda Del Pianista Sull'Oceano)>
쥬세페 토르나토레 라는 이름을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이야기를 풀어가기 조금 쉬울 수도 있겠다. <씨네마 천국>, <스타메이커>, <말레나> 등 재미와 완성도 면에서 늘 일정수준 이상의 작품을 선보였던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이 영화를 선택할 요건은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를 보아하니 음악을 강조하려 한 것 같은데, 이 또한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고개가 끄덕여 지지 않을까 싶다. 주연을 맡은 팀 로스 역시도 영화에 힘을 싣고 있는데, 지독한 분장으로 식별이 힘들긴 하지만 <혹성탈출>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으며, <펄프 픽션>, <저수지의 개들> 같은 독특한 작품에서 선을 보인 경험이 있다. 할리우드가 인정하는 인상파, 연기파 배우이니 이 기회를 통해 그의 진면목을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이미 무비스트 20자 평에서도 좋은 이야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니, 가을이라는 계절적 요건과 맞아 떨어지면서 꽤 볼만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피아니스트 (La Pianiste)>
개봉을 서두르고 있는 미카엘 하케네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먼저 비위가 약한 사람들에게는 권하기 힘든 강렬한 색채를 지닌 작품이다. 전작 <퍼니 게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들은 관객들과 소통하기 보다는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면서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끔 만드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비롯해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휩쓸면서 지난해 최고로 많은 화제를 모았던 작품들 중 하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던 이 작품은 지나친 성적인 유희와 고문, 노예화 등이 과연 표현의 자유 라는 미명아래 모두 허용될 수 있는가 라는 반응을 불러 일으켰을 정도로 센세이셔널 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 작품이 극장에서 멀쩡히 상영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를 가득히 채우는 브람스와 슈베르트의 음악들이 거친 영상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듯.
<피아니스트 (The Pianist)>
제작비 3500만 달러가 투입된 이 작품은 앞서 밝힌 영화들에 비교해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올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작품은 <차이나타운>, <악마의 씨>, <비터문>등의 문제작을 만들었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신작이다. 앞서 밝힌 영화들이 피아니스트를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영화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로 차용했다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실존 피아니스트를 주인공으로 하여 역사의 굴곡을 표현하고 있는 대작이다.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영국, 폴란드 등 다국적 영화인들이 힘을 합해 만든 이 작품은 2차 대전을 배경으로 유대계 폴란드 인이자 당대를 주름잡았던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브람스토커의 드라큐라>, <시고니 위버의 진실>등에서 중후하면서도 매혹적인 클래식 음악을 선보였던 워즈시치 칼라의 음악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도 상당히 반갑게 느껴지는 작품으로, 보는 것과 듣는 것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는 볼만한 수작임에는 분명한 가을 영화다.
대충 어떤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구분이 되는가? 어떤 작품을 볼 것인지 대해서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가? 차라리 세편 모두 보고 그 매력을 각각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 참에 문화적인 면으로 살을 찌우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풍성한 가을의 오곡백화만큼이나 푸짐한 가을 영화들... 아... 생각만으로도 배가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