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우연한 계기로 만나서 사랑하고 사소한 오해로 파경의 위기를 맞이했다가 결국 다시만난다는 감동(?)의 해피엔드로 끝나는 수많은 멜로물들. 수많은 대중가요가 세기가 바뀐 지금에도 '사랑'이라는 화두를 끈질기게 부여잡고 놓지 않는 것처럼 영화사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많은 대중영화는 멜로물의 기본 토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헐리우드에서는 프랭크 카프라의 스크루볼 코미디 부터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때'나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에 이르기까지...그리고 한국에서는 [접속]이나 [약속], [편지]와 같은 멜로물까지...멜로장르는 대중의 감성을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자극할 수 있는 상업영화의 형식일 것이다.
어쩌면 바로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뻔한 해피엔드가 예견되는 장르영화는 일상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대중들의 퇴행심리를 만족시키는 최고의 오락물일른지도 모른다. 최소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열심히 부여잡고 있으면 왠지 버거운 일상의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일종의 신화들...멜로영화를 탐닉하는 사람들은 아마 사랑이라는 신화의 광신도가 아닐까.
하지만...[생일 선물]을 한 번 요모 조모 살펴보면, 멜로의 정형화된 공식에 너무나도 딱 들어맞는 구태의연함이 눈에 띄게 드러난다. 프랑스에서 촬영했다는 점을 특기사항으로 기록해야 하나? 아니면 [러브레터]나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에 출현했던 일본 꽃미남들의 출연에 점수를 줘야 할까? 2001년인 지금 이러한 80년대 내지는 90년대 초반이나 통할 법한 트렌디 드라마 같은 영화 구조로 입맛 까다로운 관객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과연 가능할 지 의문스럽다.
이 영화 자체가 아마 잘팔리는 문화상품으로 기획된 영화라고 판단 되기에 작품성이나 예술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최소한 상업영화로 기획된 영화라 할지라도 소비자의 취향과 시장 상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솔직히 95년 개봉 당시에 이 영화가 그렇게 일본에서 히트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는다.('러브레터'를 밀어냈다구? 설마...) 하물며 세기가 바뀐 지금에 와서 이런 영화를 개봉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아마도 [러브레터]를 통해 생긴 일본 멜로 영화에 대한 국내 관객의 인상을 과신한 결과가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트렌드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쳐나가는 작가 영화가 한국에 많이 나타나길 희망하고 있다. 상업성과 대중에 휘둘려 기존의 장르에 얽매이는 것이 스크린을 통한 창의력과 상상력의 세계를 얼마나 얽어매고 있는가에 대한 점은 지각있는 관객들이라면 이미 의식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장르라는 견고한 돌담 속에서 끊임없는 자기복제로 시간을 허비하기 보다 과감하게 그 벽을 깨고 새로운 영화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줄 그런 작가의 지속적인 출현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
솔직히 그렇고 그런 멜로 영화를 보고 싶다면 차라리 TV리모컨을 붙들고 앉아 드라마 매니아가 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우리가 영화관에서 기대하는 건 이런 구태의연한 스토리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