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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후 진단! <왓치맨>은 진짜 저질에다 진정한 실패작이고 최악의 낚시 영화일까?
2009년 3월 11일 수요일 | 하성태 이메일


1년 전 개봉했던 <스피드 레이서>을 떠올려 보자. ‘비’ 정지훈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에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워쇼스키 형제 연출,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 <마하 고고>의 리메이크, 3억 달러에 달하는 제작비라는 외형이 영화 팬들의 기대를 한껏 고조시켰었다. 그런데 웬걸. 뚜껑을 열자 찬반양론이 강하게 격돌했고, 국내 흥행 또한 <아이언 맨>에 밀려 첫 주 40만 명에 만족해야 했다(참고로 개봉 2주 차던 5월 둘째 주 <아이언 맨>의 누적 관객 수는 370만 명을 넘겼다). 갈무리해보면 <스피드 레이서>에 대한 비판은 과도한 CG의 사용과 전형적인 성장영화의 내러티브가 성인 취향과는 동떨졌다, 라는 것이 주를 이뤘다.

아직 성급한 재단일지 모르지만, <왓치맨> 또한 <스피드 레이서>와 비슷한 운명에 처할 위기를 맞았다. 개봉 첫 주 34만 동원. 18세 이상 관람가라는 핸디캡과 160분에 달하는 상영시간에 따른 일일 회 차 감소, 그리고 비수기의 시작인 3월 초 개봉이라는 약점을 고려할 때 400개에 달하는 스크린 수임에도 선방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의아한 건 평점이다. 포털 평점이 5점대를 달리는 것도 모자라 “최악의 낚시 영화”라며 관람을 만류하는 글도 종종 목격된다.

미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알란 무어의 그래픽 노블 팬들이 즐비한 미국의 첫 주 5,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2007년 역시 잭 스나이더 감독이 연출한 <300>의 7천만 달러에는 뒤쳐지지만 남부럽지 않은 성적이다. 그러나 역시 미국에서도 찬반은 갈리는 양상이다. 특히나 평론가들의 평가가 그렇다. 로저 에버트는 “난 이 영화를 한 번 더 볼 계획이다. 이번엔 아이맥스에서 보고 평가를 덧붙여야겠다. 사실 내가 이 영화의 함축과 뉘앙스를 모두 이해했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분명 파워풀한 경험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왓치맨>은 <다크 나이트>와 같이 오락적인 작품이기보다 확실히 <매트릭스> 같은 종류의 영화다”라며 A 등급을 부여했다. 반면 좀 더 엄숙한 뉴욕타임즈의 A.O. 스코트의 경우 “잭 스나이더의 영화 버전 <왓치맨>은 소름끼치고 잔인한 여정으로 코믹북의 신화로 인도한다”며 ‘interminable’ 즉 ‘끝없이 지루한’이란 수식과 함께 무려 D등급을 날렸다. “우리가 2009년에 첫 번째로 만난 진정한 실패작인 것처럼 보인다”는 할리우드리포터의 평가도 무자비하기는 마찬가지다. 야후 무비에 올라온 평균 평점은 평론가와 네티즌 공히 ‘B-’. 평균 ‘B’를 받은 <300>보다 박한 평가 되겠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이 벌어질 태세다. “잘 만들어진 최악의 저질 영화?”라는 제목을 단 조선일보 한현우 기자의 리뷰도 비슷한 맥락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화장실 낙서이자 관객에 대한 안하무인의 결정판이다(중략).이 영화는 만화에 열광한 소수 집단을 위한 비공개 모임용이다(중략). <왓치맨>은 영화의 매체 특성을 만화와 혼동한 채 초고속으로 질주한 극단적 선례로 남을 것이다(중략). 감독은 암시나 상징 없이 모든 상황을 모두 묘사하며 폭력성을 극대화했다(중략).” 영화와 만화라는 매체 차이, 마니아 취향의 팬 서비스용이라는 것, 폭력성에 대한 비판의 골자 되겠다. “이 영화는 모양새 자체가 성취입니다”라며 “전 <왓치맨>이 정말로 좋은 영화가 되기엔 원작을 지나치게 존경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나친 존경은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존중하는 무언가를 있는 모습 그대로 구체화시키는 것만 해도 굉장한 예술적 성취이죠”라고 호평을 한 영화칼럼니스트 듀나 와는 상반된 평가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왓치맨>은 진정 마니아들만을 위한 값비싼 영화적인 독후감일까?

<택시 드라이버>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기억하라!

“<왓치맨>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는 원작이 슈퍼히어로에 관한 문화만큼이나 영화와 관련된 팝 컬쳐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난 로어셰크가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믿고 있다. 또 ‘워 룸’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반영이라고 믿는다. 난 이 영화가 다른 영화들이 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래픽 노블과 영화와의 관련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원작은 그 이야기 자체 속에 언급된 팝 컬쳐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 영화화 작업이 원작의 방대함을 탐험하는 방식의 일부라 믿은 동시에 시각적으로도 거대한 재미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 알려지다시피 <왓치맨>은 테러 길리엄과 대런 아로노프스키와 폴 그린그래스가 손을 뗀 프로젝트다. 잭 스나이더는 “TV 시리즈로나 가능할 것”이라던 지난한 각색 과정을 버텨내면서 부시 행정부와 중동과의 테러전으로 탈바꿈됐던 각색을 온전히 원작의 시간대로 되돌려 놓았다. 그건 전작 <300>과는 상반된 과정이었다.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하는 것이 빈곤한 내러티브를 시각적으로 채워나가는 작업이라면, 앨런 무어의 <왓치맨>은 방대한 원작과 철학적인 세계관을 한정된 상영시간에 맞게 비워나가는 작업이었을 터. 20여 년 동안 감히 영화화를 꿈꿀 수 없었던 난공불락의 그래픽 노블을 탐험하는 방식은 잭 스나이더가 위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원작의 시대정신과 철학을 계승할 것, 그리고 방대한 양의 원작을 영화화하면서 시청각적인 체험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두 가지 전제위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더욱 <택시 드라이버>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인용은 간과할 수 없는 핵심이다. 창녀, 포주, 마약 중독자, 호모, 레즈비언이 득실거리는 뉴욕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불면증 환자 트래비스. 인간쓰레기를 처단해야 한다는 편집증에 시달리는 베트남전 참전 용사 트래비스와 영화 속 시간인 1977년에 합법적인 슈퍼히어로 활동을 금지한 킨 법령 이후에도 암암리에 악당들을 폭력으로 처단하는 로어 쉐크는 분명 이란성 쌍둥이와 같은 존재들이다.

핵전쟁에 대한 공포는 어떠한가. ‘We'll Meet Again’라는 노래와 함께 온 세상을 버섯구름에 잠기게 하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라스트 신을 복기해 보라. 베트남 전에서 승리하고, 닉슨이 3선에 성공한, 알란 무어가 재창조한 허구 역사 속 1980년대 미국은 온 나라 전체가 핵전쟁의 위협에 떨고 있는 공황상태에 대한 묘사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을 치러내며 전쟁을 통해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쌓아올렸던 군산복합체 미국에 대한 직설화법. 게다가 로널드 레이건이라는 보수우파가 집권한 1980년대 미국의 우경화에 대한 알란 무어의 답이 바로 <왓치맨>인 것이다(물론 영화 속에서는 카우보이가 미국 대통령에 집권할리 만무하다며 독설을 날리고 있지만).

여기서 <왓치맨>에 대한 대중적인 호불호는 분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닉슨의 3선이라는 상징적 의미나 구소련이 몰락하기 전 냉전이 극에 달했던 1980년대를 반영했던 원작의 비관적인 세계관을 계승하는 <왓치맨>의 기본 전제를 동의하지 않거나 이해할 의지가 없다면 <왓치맨>의 재미는 당연히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풍성한 혹은 잡탕과도 같은 삽입곡들의 사용만 봐도 그렇다. 밥 딜런의 ‘The Times They Are A-Changin’와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 냇 킹콜의 ‘Unforgettable’과 KC & The Sunshine Band의 ‘I'm Your Boogie Man’ 등 록과 포크, 재즈를 종횡 무진하는 이 리스트는 당대의 시대 분위기를 재현하고픈 잭 스나이더의 욕망을 읽을 수 있는 단적인 부분이다.

폭력성은 원작에 대한 충실한 재현일 뿐

원작의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갈리겠지만, 그러나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듯 <왓치맨>은 원작에 대한 충실한 재현을 목적으로 삼았다. 예컨대 화성으로 건너간 닥터 맨해튼이 세운 거대한 시계의 이미지를 디지털 기술로 스크린 위에 구현하는 것. 그래픽 노블에서는 그저 만화적 상상력으로 치부하거나 그저 짐작할 수밖에 없던 것을 시청각적 쾌감을 동반한 영화적인 경험으로 재현하기. 이런 부분이야 말로 스스로 원작의 광 팬임을 자처했던 잭 스나이더가 이 프로젝트에 뛰어든 이유일 것이다.

반면 원작의 프레임을 고스란히 옮긴 컷을 종종 발견할 수 있지만, 원작의 모든 컷을 그대로 찍었다면 “6시간 20분짜리 영화로 완성됐을 것”이라는 잭 스나이더는 고백이 결코 엄살은 아니었을 것이다. 방대한 원작을 160여분 안에 요약해야 하는, 일종의 뺄셈의 영화인 <왓치맨>에서 더해진 것이 있다면 흥행을 고려한 액션 장면일 것이다. 이미 <300>에서 검증된 고속 촬영을 이용한 액션의 강세는 코미디언의 살해당하는 오프닝에서부터 빛을 발한다. 아마도 뒤엉킨 플롯과 장황한 대화가 전편을 지배하는 원작의 장중함을 이완시켜주기 위해서 필연적인 선택이었으리라.

그러나 일부 평론가와 대중들이 손 사레를 치고 있는 과도한 폭력성은 반드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원작의 폭력성은 결국 시대정신의 알레고리로 읽을 수밖에 없다. 무자비한 자경단임을 자처하는 로어쉐크가 악에 대해 처절한 폭력으로 맞대응하는 것은 정확히 상술했듯 1960~70년대의 시대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코미디언의 광기도 마찬가지다. 코미디언은 자기 아이를 임신한 베트남 여성을 무자비하게 죽인 자신이나 이를 수수방관한 닥터 맨해튼이나 다를 게 뭐냐고 항변한다.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끄는 등 미국 정부에 의해 마지막까지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부여받은 두 사람의 영웅적 행동이 결국 폭력의 재생산이라는 걸 분명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원작의 설정을 고스란히 계승하는 잭 스나이더가 첨부한 것은 그러한 폭력성을 시청각적으로 충실히 재현하는 것뿐이다. 어찌하겠는가. 피와 살이 튀는 그래픽 노블의 평면적 프레임이 영화로 옮겨지면서 그 충격이 배가되어 전달되는 것을. 또 하나, 이러한 폭력성은 더 많은 관객을 끌어 모은 <300>에서 이미 경험했던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차라리 페르시아 군을 철저하게 괴물처럼 묘사한 <300>이 일각에서 중동을 바라보는 서구의 시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폭력에 대한 잣대를 이중적으로 들이대는 것은 곤란하다. 어쩌면 잭 스나이더가 원작을 훼손하지 않고 세계관을 표현의 수위 모두 고스란히 재현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슈퍼히어로의 진화가 부러운 이유

결론적으로 <왓치맨>이 부러운 것은 지극히 미국적인 장르인 슈퍼히어로 장르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식 슈퍼히어로의 자기반영인 <아이언 맨>, 꽉 짜인 완결성을 토대로 9.11 시대 이후의 미국식 패권주의에 대한 자기 성찰인 <다크 나이트>, 영웅의 책임을 강조하는 <스파이더 맨>나 소수자와 타자에 대한 은유인 <엑스맨> 시리즈까지. 브라이언 싱어와 크리스토퍼 놀란, 샘 레이미 등등 선댄스에서 발굴되고, 대중문화의 B급 감수성을 수혈 받은 감독들이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거대 자본을 지원받아 지극히 대중적인 코드와 정치적인 무의식을 버무리고 있는 슈퍼히어로 영화들은 점점 무시무시해지고 있다. 그 그 중 <왓치맨>은 그 자체로 배 나온 ‘배트맨’ 나이트 아울과 세계 평화에 심드렁한 ‘슈퍼맨’ 닥터 맨하튼으로 대변되는 코스튬 슈퍼히어로 물에 대한 자기 반영과 비틀기가 동시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경우다. 복잡한 플롯을 취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영시간의 많은 부분을 캐릭터의 과거에 할애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모든 공은 자기동일성을 탑재한 허구의 세계 속에서 냉전을 비롯한 현실 정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우주와 시공간을 연결하는 방대한 철학을 심어 놓은 원작자 알란 무어의 공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대한 재해석이 거의 전무한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은 충실한 재현만으로도 <판타스틱4>와 같은 킬링타임 용 슈퍼히어로 팝콘 무비를 뛰어넘는 성취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부디 노여워 마시길. 로저 에버트가 언급한 <매트릭스> 또한 1999년 국내 개봉 당시 <쉬리>에 한참 못 미쳤다는 건 둘째치고, <미이라>보다도 뒤쳐진 채로 극장 간판을 내린 전력을 복기해 보라. 미국적이며 철학적인 블록버스터가 한국 관객들의 입맛을 100% 맞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매트릭스> 만큼 시대를 공유하는 혁명적인 담론을 제시하지는 못하더라도 <왓치맨>은 역사를 어떻게 재구하고 재해석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원작의 ‘광신도’ 잭 스나이더는 여타 코믹스 원작의 슈퍼히어로 영화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1억 5천만 달러짜리 독후감을 내놓은 셈이다.

2009년 3월 11일 수요일 | 글_하성태(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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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oo1212
저는 영화를 즐겨보는데 이 영화는 솔직히 별로였어요.
너무 복합적인 생각을 나열하려했던 듯...
주장을 하려면 하나만!   
2009-03-11 23:05
spitzbz
그리고 국내에서 팬들이 메기는 평점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일까요..
영화광에 전문집필인일지라도.. 아직까진 커플문화와 단순명쾌한 영화가 주종인 한국 극장가에서 평점운운하는것은 마치 박지성이 경기한뒤 지방 모 신문사에서 최고평점 9점대를 받았다고 하는것과 진배없지 않을까요..   
2009-03-11 22:28
spitzbz
300만큼 놀라움으로 영화를 지켜본 저같은 팬들도 분명.. 많을 것입니다. 영화를 흥행으로 평가할수많은 없듯이.. 작년 노인을위한나라는없다 는 아예 몇몇 상영관에서만 잠깐 상영되다 말았습니다. 그 최고의 작품이...   
2009-03-11 22:26
wnsdl3
음..볼까말까 고민되네요...   
2009-03-11 20:46
nanyoungv
으~ 이런 글 볼때마다 더 모르겠어요^^; 그냥 관심이 생기면 일단 제가 뚜껑을 열어봐야 할듯   
2009-03-11 20:13
woodyh
bjmaximus님/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일단 1999년 당시 국내 박스오피스 집계는 서울 관객 동원을 기준이었으니, 그에 따르면 <쉬리> <미이라> <주유소 습격사건>에 뒤를 이었던 <매트릭스>는 흥행에 성공한 블록버스터가 맞지요. 하지만 1999년은 <쉬리>이후 우리 영화의 관객 수치가 확연히 늘던 시기였기 때문에 기사에서 비교한 것은 단순한 순위나 수치보다 평년과 비교했다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2009-03-11 19:27
bsbmajor
밑에님? 미국에서 찬성이 훨씬 많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홍성진 영화해설이나 이 기자분님이 쓰신 글대로.. 미국에서 평론가들이 찬성보단 반대가 다소 우위에 있는걸로 써있던데요? 야후와 로튼 토마토에서도 찬반 갈리던데.. 아닌가?   
2009-03-11 19:24
bjmaximus
암튼 <왓치맨> 국내 평점 5점대는 imdb에 비해 넘 안 좋긴 하지만 만화 원작 영화로 미국에선 흥행한 <데어데블><판타스틱4> 시리즈,<고스트 라이더>가 국내에서는 썰렁한 반응(흥행 실패)과 평점 안 좋았던거(미국에서도 평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지만)와 비슷한 케이스로 봐도 될 듯.   
2009-03-1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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