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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을 대변하는 연기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문정희
2014년 11월 20일 목요일 | 최정인 기자 이메일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숨바꼭질> 촬영을 마치고 조금 더 여성스럽고 자연스러운 역할을 하고 싶은 갈증이 생겼어요. 인간의 욕심이 참 묘해요. 한 부분을 특정한 영화로 채우고 나면 다른 부분은 또 다른 영화로 채우고 싶어요. 이해가 되나요? (웃음) 그래서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감사했어요. 상대 역을 누가 맡을 지가 관건이었는데, <숨바꼭질> 개봉 전에 김상경 선배가 <몽타주> 시사회에 초대해서 저녁을 같이 먹은 적이 있어요. 김상경 선배는 <살인의 추억>과 같은 영화에 출연하기도 해서 굉장히 진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허물없이 편한 스타일이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아빠를 빌려드립니다>에서 김상경 선배가 완전히 망가지는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내가 태만(김상경)의 발랄함을 조금 누그러뜨리는 현실적인 지수를 연기한다면 둘의 합이 제법 괜찮겠다는 감이 왔어요. 그런데 <아빠를 빌려드립니다>가 이렇게 늦게 개봉할지 몰랐죠(웃음).

그러게요. 출연한 두 영화 <카트>와 <아빠를 빌려드립니다>가 연이어 개봉해요.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촬영이 끝날 무렵 부산영화제에 갔는데 명필름 심재명 대표님이 <카트> 시나리오를 줬어요. <카트> 촬영할 때 <아빠를 빌려드립니다>가 개봉할 줄 알았는데 두 영화가 연이어 개봉하게 됐네요. 함께 개봉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지금 드라마를 하고 있는 김상경 선배의 시너지도 있으니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부담 없어요(웃음). 그리고 두 영화의 색깔이 겹치면 걱정했을 테지만 <카트>와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전혀 다른 영화니까요.

최근 출연한 드라마 ‘마마’와 영화 <카트> <아빠를 빌려드립니다>에서 모두 엄마 역을 맡았어요.
사람들이 엄마 역할만 계속 하는 것이 억울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개인적으로는 엄마 역할을 맡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그리고 엄마를 연기할 때 모성애를 잘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인물의 엄마라는 포지션을 인지하는 순간 관객들은 이미 모성애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본다고 생각했거든요. 만일 모성이 주된 감정인 역할이었다면 오히려 피했을 수도 있어요. 연기할 때는 작품 속 인물이 처한 입장이나 캐릭터에 더 중점을 뒀어요. 예를 들어 <연가시>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순이 어떻게 변하는 지가 재밌었고, <숨바꼭질>은 헬멧을 쓴 여자가 극한의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어요.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지수의 여성적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고요. 지수야말로 기혼녀들의 의리와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잖아요. 태만과 지수의 관계가 남녀의 사랑뿐만 아니라 기혼자들이 겪는 위기를 비롯한 사랑의 다른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좋았어요. 엄마가 아닌 역할은 고를 수 있는 작품이 너무 한정돼 있어서 기다리다가는 인생이 모두 지나가 버릴 것 같았어요(웃음). 그래서 나를 너무 가두지 말고 해보고 싶은 것은 모두 해보려고 했어요.

<아빠가 빌려드립니다>는 첫 코미디 출연작이에요. 전부터 코미디 장르에 욕심이 있었나요?
슬랩스틱 코미디는 아니더라도 부담 없는 코미디는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코미디지만 현실적인 부분도 많아서 드라마적 요소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숨바꼭질>을 하고나니 코미디가 더 하고 싶더라고요. <숨바꼭질>에서 소진돼 버리니까 여성적인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수는 엄마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망가지는 아줌마 역할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전에 연기했던 역할들보다 머리도 예쁘게 하고 나오고요(웃음).
지수의 분량이 예상보다 적어서 아쉬웠어요.
저도 그래요(웃음). 하지만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아빠를 빌려주는 것이 중심이에요. 아빠의 이야기에 딸과 엄마가 가세해서 마지막을 훈훈하게 마무리하는 이야기에요. 사실 원작에서는 렌탈 일화가 훨씬 더 많아요. 아쉬움도 있지만 저한테는 큰 부담 없이 효율적으로 연기할 수 있는 비중이었던 것 같아요. 고생 안하고 보너스처럼 영화를 찍었다고나 할까요(웃음).

원작을 읽어봤다고 했는데 ‘아빠 렌탈’이라는 소재를 접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요?
말도 안 될 정도로 유치하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이게 뭐야, 이런 걸 왜 써(웃음).

결혼한 입장에서 남편이 쓸모없이 느껴질 때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럼요(웃음).

쓸모없는 남편을 누군가에게 빌려줘서라도 돈을 벌려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돈만 벌 수 있다면 꿈을 마음껏 펼쳐봐! (웃음) 남편이 그렇게 해서라도 돈을 벌 수 있다면 그 꿈을 제가 꺾지는 않겠어요(웃음). 처음부터 태만이 지수에게 렌탈 사업을 솔직하게 말했으면 오해가 없었을 테고 이야기가 달라졌을 거예요. 하지만 갈등 요소가 없었겠죠(웃음). 태만이 렌탈 사업을 지수에게 숨겼기 때문에 미연(채정안)과의 관계를 오해받는 일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아영이가 저금통을 깨면서 세 가족의 갈등이 빨리 해결 된 것이 참 다행이에요. 안 그랬으면 영화의 방향이 조금 이상했을 테니까요.

조금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아영이의 돼지 저금통은 효과적인 장치인 것 같아요.
아영이의 돼지 저금통이 석고처럼 깨질 수 있는 저금통이라서 좋았어요. 그리고 아빠를 빌리겠다고 아빠를 불러내는 아영이의 패기도 좋았고요. 그 장면에서 관객들의 감정이 굉장히 짧은 순간에 롤러코스터처럼 변하잖아요. 관객들은 저금통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아영이가 저금통을 깨려고 할 때 태만을 걱정하다가 저금통이 깨지고 내용물이 보이면 깔깔 웃어요. 하지만 곧이어 아이의 진심을 느끼게 되죠. 사실 그 장면은 배우들끼리 서로 많이 친해지면 촬영할 계획이었는데 스케줄 상 초반에 촬영해서 고민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연기는 연기이기 때문에 언제 어떤 장면을 촬영하는지는 감수해야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 신은 가족의 갈등이 해소되는 장면이라 특히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아요.
지수는 공원에 가기 전에 컴퓨터로 태만의 사업을 알게 되고 그동안 태만이 숨겨온 마음과 입장들을 이해하고 정리해요. 그때 지수가 태만에게 ‘부부라는 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같이 짐을 들고 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사가 좋더라고요. 그 장면을 촬영하면서 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누군가를 떠올리며 운 건 아니에요. 아마도 지수가 말하는 것이 제가 그리는 부부의 이상향이었기 때문에 운 것 같아요. 사실 공원 신은 지수와 태만이 관계를 회복하는 중요한 장면이기는 하지만 조금 낯 뜨거울 수도 있는 장면이에요. 하지만 본인의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러워도 영상에서 보여주면 공감가고 좋은 장면이 있잖아요. 공원 신이 그런 장면인 것 같아요.
지수를 연기할 때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고 연기했나요?
그동안 인물의 사실적이고 생활적인 느낌을 영화에서 표현할 기회가 적었어요. 공연은 무대가 크기 때문에 연기를 과장해야 된다면, TV는 화면이 작기 때문에 연기를 과장하게 되요. 아줌마들이 TV를 스치듯 보더라도 드라마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 되거든요. 일종의 드라마 언어 같은 거죠. 영화 연기도 물론 과장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연출과 잘 결탁되면 인물의 현실적인 모습만으로도 상황과 감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요. 예를 들어 화난 채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캐릭터의 상황과 존재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영화가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생활적인 면을 지수를 통해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지수가 가진 사랑스러움을 잘 살려보고 싶었고요. 10년 지기 부부사이에서 엿보이는 생활적인 요소들과 아내의 사랑스런 모습을 <아빠를 빌려드립니다>에서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상대가 김상경 선배라 더 안심됐고요.

개인적으로는 <아빠를 빌려드립니다>에서 문정희의 섹시한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웃음).
진짜요? 뭐가 섹시해! (웃음) 방귀 신? 그것 때문에?

방귀 끼기 전까지요(웃음). 화장품을 바르면서 상체를 잠깐 숙였다가 일어나는데 섹시했어요(웃음). 그런데 지수가 방귀를 뀔 때마저도 그 행위가 배반으로 다가오지 않고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더 매력적이었어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문정희의 모습을 발견한거죠(웃음).
성공했네요(웃음). 그럼 다음 영화는 섹시 코드로 가나요? (웃음) 더 나이 들기 전에 멜로는 해보고 싶어요. 아직 몸이 성할 때 말이에요(웃음). 남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이니까 난 몰라! (웃음) 남녀 간의 사랑은 시시한 건 아니지만 때로는 독약 같아요. 결혼하면 사랑의 색깔이 조금 바뀌거든요. 부부 사이에 남녀의 사랑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랑의 다른 모습이 생겨요.

단순한 장면에서도 섹시함과 구수함이 돋보이는 양면성을 연기할 수 있는 것이 배우 문정희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 배우나 캐릭터의 특정한 모습에만 유독 눈길이 가거나 혹은 거부감을 느끼기 쉬운데 문정희는 어떤 모습을 연기해도 부담 없이 좋게 느껴졌어요.
그건 사심이에요(웃음). 방귀 트는 장면이 부담스럽거나 배신감으로 느껴졌으면 영화의 색깔이 조금 달라졌을 거예요. 태만과 지수가 서로 방귀를 트는 10년 지기 부부라고 하더라도 지수가 남편에게는 여자로 느껴지기를 원했어요. 둘의 남녀 관계를 깨트리지 않고 영화의 통일감을 유지하고 싶었거든요. 영화의 마무리도 훈훈하게 인공호흡으로 끝나잖아요(웃음). 영화에서 김상경 선배가 키스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처럼 보여서 진짜 속상했어요. 선배는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는 건지! (웃음)

엔딩 크레딧에서의 키스 신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이 영화에 불과하다는 소격효과를 불러 일으켰어요(웃음).
마지막 키스 신이 길고 장렬하게 끝나서 안타까워요(웃음). 하지만 키스 신이 영화의 일관된 색깔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키스 신처럼 인물을 코믹하게 잡아야 캐릭터가 조금 덜 미운 것 같아요. 어떤 캐릭터라도 밉게 보이면 실패한 거라고 생각해요. 밉게 보인다면 미운 이유가 있어야 돼요.
남편이 명문대 출신인데 10년 동안 백수로 지낸다면 어떨 것 같아요?
명문대 출신 남편이 백수로 지내는 상황이 하나도 안 이상해요. 명문대가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웃음). 명문대를 나오는 것보다 식탁 예절 같은 기본적인 교육을 잘 배운 사람이 더 잘 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명문대를 나와도 태만처럼 백수로 충분히 지낼 수 있겠죠. 문제는 일을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건지, 아니면 노력은 하고 있는데 잘 안 되는 건지, 그 사람의 태도에 달린 것 같아요. 남편이 늪에 빠져 용기를 잃고 허우적거리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배우자의 태도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아내가 도와줘야 되는 거죠. 그런 면에서 지수가 매우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제 남편이 본의 아니게 10년을 논다고 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남편이 꿈을 10년 동안 고민했으니 다음번에 기회가 있을 때 재기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남편이 아무것도 안하고 놀면서 나만 바라보고 있다면 문제가 있겠죠. 하지만 납득되는 이유들이 있다면 그건 흉볼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태만이 껄렁껄렁한 백수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직장을 찾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어요.
만일 태만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일을 찾으려 노력했다면 지수가 태만을 영화에서처럼 퉁명스럽게 대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태만이 백수로 지낸 10년 동안 어떤 과정을 겪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10년이라는 세월을 설정으로 정해놓고 그 이후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잖아요. 영화 속에서 태만은 이미 ‘번 아웃’된 거예요. 그래서 조금 뻔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태만은 포기도 아니고 노력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경계에 있는 거죠. 지수가 미용실을 잘 꾸려나가고 있으니까 스트레스를 조금 덜 받는 것일 수도 있어요. 사실 태만이 10년을 백수로 보냈다는 건 그만큼 성실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는 해요. 어떻게든 일하려고 했다면 막노동이나 과외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웃음).

이름부터가 태만이에요(웃음).
사실 제 주변에도 좋은 학교를 졸업했는데 쉽게 직업을 못 찾는 분들이 많아요. 작은 기업에서 고학력자를 부담스러워하기도 하고,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들은 본인보다 학력이 좋은 사람을 밑에 두는 걸 불편하게 생각해서 고학력자를 잘 안 데리고 가기도 하더라고요. 지수도 그런 사회 분위기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수가 그런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나서 태만이 집에서 노는 것을 너무 타박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한 순간이 영화가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내 가족인데 뭐라고 하겠어요. 지수는 태만이 언젠가는 좋은 직업을 찾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미용실에서 열심히 일하는 거죠.

태만이 지수에게 ‘너도 결국 백수 남편을 데리고 살아준다고 생각했던 것 아니냐’고 말했을 때는 화가 나더라고요(웃음).
그때 아영이가 차 뒤에 타고 있었는데 아이를 인식해야 할지 아닌지를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아이는 둘째 치고 그 상황에서 태만과 지수가 교환하는 눈빛은 순수한 남녀사이의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태만도 그 말이 정말 진심이었겠어요? 보통 10년 정도를 싸우면 서로 상대에게 원하지 않는 말들을 하게 돼요. 진심이 아닌 말들로 상대방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거든요. 그런데 신뢰가 쌓이면 상대방이 지금 진심이 아닌 말로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까지도 읽을 수 있어요. 그럴 때 여자는 눈물이 나는 것 같아요. 소통의 단절을 느끼는 거죠. 그렇다고 상대방이 미운 건 아니에요. 잠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상대방도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눈물이 나는 거죠. 아마도 지수가 운전하다가 태만과 마주치는 장면에서는 저도 그런 입장에서 연기했던 것 같아요(웃음).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코믹한 요소가 많지만 생활과 밀착된 부분도 많아요. 예를 들면 남편과의 말다툼이나 애정표현, 그리고 가게 주인과의 신경전 같은 것들요. 그런 장면을 연기할 때는 어떤 부분에 신경 썼나요?
태만이 현실보다 조금 과장되고 코믹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영화의 밸런스를 맞추려면 지수가 현실적인 면을 담당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수가 너무 과장되거나 가볍게 보이면 가족의 이야기가 현실 문제로 느껴지지 않을 여지가 있잖아요. 지수가 겪는 현실 문제도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수의 겉모습은 예뻐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가족의 상황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지수의 화사함이 현실의 무거움을 조금 누그러뜨렸으면 했어요. 태만의 코믹한 느낌과 영화의 밝은 톤도 유지하면서요. 감독님과도 그런 부분을 충분히 이야기했어요. 영화가 전반적으로 현실적이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태만과 지수가 만났을 때 코믹한 요소와 현실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죠.

지수가 예쁜 이유가 있었군요(웃음). <아빠를 빌려드립니다>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문정희를 처음 본 건 ‘연애시대’였는데 그때 연기한 유경은 너무 예뻤어요.
사실 사람들이 유경을 예쁘다고 생각할지 몰랐어요. 하나의 캐릭터로서 역할을 일관되게 마무리한 작품은 ‘연애시대’가 처음인데, 당시에는 코디도 없어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첫사랑이라는 심벌의 매력을 도대체 관객에게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지금은 도와주는 전문가도 있고 저도 뷰티 관련 정보를 많이 접하면서 전보다 나아졌지만, 사실 외모를 잘 못 꾸며요. 어렸을 때부터 제가 생각하는 미(美)는 외모가 아니라 사람이 주는 기운과 느낌이거든요. 그런 매력이 기억에 오래남지 얼굴은 오래 남지 않는 것 같아요. 오드리 헵번과 비비안 리가 단순히 예쁜 옷을 입고 예쁜 얼굴을 가져서 미의 심벌이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들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매력이 있거든요. 오드리 헵번이 기타 치는 모습이나 비비안 리가 클라크 게이블을 사랑이 묻어있는 눈빛으로 새초롬하게 노려보는 모습이 더 기억에 남았어요. <더티댄싱>의 제니퍼 그레이도 매부리코에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사랑에 빠져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잊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연애시대’에서는 유경이 동진을 다시 만나 처음 부를 때 아직까지 동진을 잊지 않고 있다는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예쁘게 보일 거라는 생각은 못했어요. 남자들이 ‘연애시대’에서의 제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면 유경이 가진 매력이 뭐였는지 오히려 제가 물어보고 싶어요.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유경의 매력을 아련하게라도 느껴서 동감한 건지, 아니면 당시 유경이 가진 겉모습이 더 매력적이었던 건지 물어보고 싶어요. 후자라도 기분 좋은 일이기는 해요(웃음). 하지만 예뻐 보이는 것에 중점을 뒀던 건 아니에요.

<카트>는 <아빠를 빌려드립니다>와는 또 다른 색깔의 영화인데 출연한 계기가 궁금해요.
<카트>는 영화가 가지는 의미와 메시지가 힘이 있어서 선택했어요. 그리고 배우간의 합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데 염정아, 김영애, 김강우가 이미 캐스팅된 상황이라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캐스팅된 배우들 각자의 내면에서 풍기는 향기와 에너지가 영화에 묻으면 영화의 사회적인 메시지와 아줌마들의 이야기가 잘 얽혀서 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사실 혜미는 사건의 중심에 있지만 삶이 많이 설명되는 캐릭터는 아니거든요.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는 캐릭터도 아니고 비중이 큰 편도 아니죠. 하지만 혜미의 함축된 감정을 툭툭 끊어지게 전달하는 영화의 표현법이 좋았어요. 혜미가 본인 스스로 자신의 삶을 소개하는 건 과거 정규직이었는데 해고를 당했고 이혼을 했다고 소개하는 한 장면뿐이에요. 혜미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상상하게 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설명이 부족했기 때문에 캐릭터를 표현하기 더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혜미와 같은 함축적 캐릭터가 영화에 줄 수 있는 힘이 분명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선희와 혜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혜미를 선택할 거예요. 그리고 혜미는 제가 가지고 있는 재료 중에서 단번에 꺼낼 수 있는 카드였어요.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배우에게 있는 성향이라는 거죠. 관객이 생각할 때 저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역할일 수도 있고요. 혜미 같은 캐릭터를 연기해 본 적은 없지만 혜미가 가진 똑 부러지는 성향이 저한테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혜미처럼 단번에 꺼낼 수 있는 카드가 몇 장 안 남았어요(웃음).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나 하나는 별 거 아닌 존재지만 <카트>나 <아빠를 빌려드립니다>와 같은 작품이 운명처럼 찾아왔을 때 해야 될 일은 명확한 것 같아요. 주변을 둘러보면 대변되어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영화 같고 더 큰 영감을 줘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저를 세상에 한 번 던져보는 거죠. 아니면 말고요. 물론 서툴기 때문에 넘어지기도 하고 힘들지만, 배우라는 기술자를 넘어서는 제 자신을 보고 싶어요. 너무 거창했나요? (웃음) 그래서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열심히 살고 싶어요.

<연가시> <숨바꼭질>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장르적 요소가 강한 영화지만 <카트>는 현실적 요소가 강한 영화에요. 장르영화 안에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것과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영화에서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것은 연기하는데 있어 차이가 있나요?
묘하게도 차이가 있어요. 일단 감독이 영화 속에서 완벽한 리얼리티를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허구적인 틀 안에서 리얼리티를 추구할 것인지, 전체적인 톤을 조절해야겠죠. 하지만 배우도 영화 전반의 통일감을 유지하려는 의식은 가져야 해요. 만일 배우가 그런 의식이 없다면 매번 감독에게 어떻게 연기해야 되는지를 물어봐야 하잖아요. 배우도 본인이 어떤 영화를 찍고 있는지, 어떤 기반에 발을 붙여야 되는지, 영화의 색깔은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출연한 작품이 연이어 선을 보이고 있고, 인기도 높아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결과가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문정희의 책임으로 돌아올 여지도 있어서 부담이 될 것 같아요.
그렇게까지 생각하면 삶이 너무 피폐해지니까 생각을 차단하려고 해요(웃음).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기는 해요. 실제로 그렇게 되는 배우들을 많이 봤거든요. 부담스럽고 걱정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생각은 딱 끊었어요.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긍정의 노력이에요.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 일은 그때 생각하겠어요(웃음). 지금은 고맙고 감사하다고만 느낄래요. ‘마마’가 끝나고 저를 ‘자기’라고 부르는 10대 팬이 생긴 건 굉장히 재밌고 신기한 일이에요(웃음). 그런데 다 여자에요(웃음). 재미난 추억인 것 같아요.

트위터에 ‘마음을 담아, 온 마음 다해’ 라는 표현을 많이 쓰더라고요.
팬들하고 저만의 코드에요. 팬들이 제게 늘 그런 표현을 써요. 불특정 다수를 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팬들에 대한 저의 표현을 그렇게 한 거예요. 귀엽게! (웃음)

앞으로의 활동 계획도 궁금하네요.
방학을 맞아 가족과 함께 쉴 거예요. <연가시>부터 연이어 쉬지 않고 일을 해서 한 달 이상 방학을 제대로 갖지 못했어요. 그래서 올해는 이렇게 잘 마무리 하고 내년에 좋은 작품 또 해야죠.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무계획이 계획인 것 같아요. 많이 생각해도 원하는 대로 하루가 흘러간 적은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계획을 잘 안 세워요(웃음). 그때그때 열심히 살기위해 노력하고 있어요(웃음).

2014년 11월 20일 목요일 | 글_최정인 기자(무비스트)
인터뷰_서정환, 최정인 기자
사진_권영탕 기자

5 )
pinkkaii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더 기대되는 여배우! 다양한 연기를 소화하면서 더욱 멋진 여배우로 거듭나실 것 같아요~   
2014-12-17 10:30
minsu13
사진으로 보니 문정희님 정말 예쁘시네요!! 미소가 아름다우세요^^ 연기 또한 말로 표현안해도 될 거구요.   
2014-12-16 23:00
masakiaiba
배우 문정희님 요새 TV와 영화를 종횡무진 하시는 것 같아 보기 좋네요^^ 숨바꼭질때 정말 무섭게 봤는데 카트를 보면서 또 이번에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를 보면서 다양한 역할을 정말 잘 소화하시는 모습에 팬이되었네요^^   
2014-12-15 23:15
khai1063
스크린에서 비춰지는 모습이 어색할 것 같았던 배우였는데 숨바꼭질에서의 눈빛과 표정 연기를 보니 걱정뿐이였더라구요~ 카트를 보면서도 작품에 잘 녹아든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좋은 연기 보여줄거라 생각하면서 응원해요~   
2014-12-12 12:56
bxo1kto
카멜레온 문정희. 연기변신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여배우.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대박이 난다고 하는데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예외인듯 하네요   
2014-12-0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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