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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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영광이 넷플릭스 시리즈 <트리거>로 시청자 앞에 섰다. 그가 연기한 ‘문백’은 가벼워 보이는 태도 속에 비밀을 감춘 듯한 인물. 김영광은 “문백이는 참지 않지”라며 스스로를 3인칭으로 표현할 정도로 강한 자기애를 지닌 캐릭터라고 소개한다. 문백을 연기하며 그는 의도적으로 행동의 이유를 쉽게 읽히지 않게 만들고, 동시에 신비로운 분위기가 풍기도록 조율했다. 무엇보다 총기 청정국인 대한민국에서 총기를 손에 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재의 신선함에 끌렸다는 김영광을 만났다. <트리거>는 작품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고 털어놓는다. 촬영을 계기로 ‘문이’과 ‘백이’라는 두 고양이의 집사가 되었기 때문. 이제는 작품 제목을 들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고양이들이 함께 떠오른다는 그는, “그래서 <트리거>는 더 특별하다”며 웃는다.
영화 <너의 결혼식>(2018)의 순정남부터 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2022)의 살인마, 최근 드라마 <귀궁>의 이무기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왔다. 작품 선택 기준은. <트리거>는 어떤 면에 끌렸나.
어떤 장기적인 계획을 잡고 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마음에 들면 하는 편이다. 다작하면서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며 경험을 쌓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그런지 우연치 않게 작품이 몰아서 나오기도 한다. <트리거>는 일단 소재가 신선했다. 문백이라는 캐릭터가 상상되면서 만화 같은 면도 있어서, 내가 잘 보여준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대본을 읽자마자 하고 싶었다.
문백 캐릭터를 대표하는 장면이나 대사를 꼽는다면.
“문백이는 참지 않지” 다. 자신을 3인칭화하는 문백이라는 캐릭터를 잘 보여준 것 같다.
연기하면서 주안점은.
그의 행보가 단순히 불우했던 과거에 대한 복수로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만약 복수극이 된다면 극의 흥미가 떨어질 것 같았다. 이런 과거를 깔고 가되, 복수를 위해 총을 시중에 풀고 총을 쏘는 상황이 된다는 구도는 피하고자 했다. 또 그의 과거로 인해 (그의) 범죄가 합리화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가능한 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주려 했다. 그의 의도가 읽히지 않게끔 하려 했다.
스타일링부터 연기 톤까지 전반부와 후반부의 ‘문백’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캐릭터의 변화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는 경계가 보이길 바랐다. 초반에는 갑자기 나타난 조력자가 당연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문백을 가볍고 밝은 성격으로 설정했다. 반면 후반부에는 그가 가진 개인적인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형성된 가치관이 드러나길 바랐다. 시한부라는 설정 때문에 아픈 모습을 감추려고 일부러 화려한 의상이나 문신으로 인물을 채워 넣었다. <트리거>의 주제가 무겁고 어려울 수도 있어서, 문백만큼은 오락적인 요소로서 시청자가 즐겁게 바라봐주길 바랐다.
후반부 ‘블루 브라운’(문백)의 모습이 너무 섹시한 것 아닌가! (웃음) 스타일링에 있어서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화면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는데 문백이 한 쪽 눈을 잃은 것과 관련해서 등에 눈 모양의 큰 문신이 있다. 촬영 중에도 의상팀과 수시로 의견을 나누며 더 화려하고 스타일리시한 슈트를 같이 골랐다. 직접 옷 제작소에 찾아가 소재까지 함께 선택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분장팀과도 문신 표현에 대해 꾸준히 상의하며 캐릭터의 외형을 완성해 나갔다.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화려한 모습으로, 또 더 말라가도록 메이크업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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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바디>나 <악인 전기> 등에서 매력적인 빌런 연기를 선보였다. 빌런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해 가는지.
상황마다 다른데 빌런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게만 보이려 하지 않고 또 그렇게 접근한다. ‘무언가 이 친구도 이유가 있겠지, 저 친구와 친해져야겠다’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면이 보이더라. 그래서 빌런이라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웃음) 특히 <썸바디> 촬영할 때 이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연기했다.
문백과 ‘이도’(김남길)는 초반에는 협력하는 관계인데, 문백의 이도에 관한 감정은 무얼까.
사실 감정을 많이 담지 않으려고 했는데 드라마 전체를 보니 오히려 감정적인 결이 느껴지더라. 문백은 이도가 점점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서 파이팅 하는 모습을 즐긴다고 할지, 흥미롭게 지켜본다고 생각했다.
액션에서도 두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 차이를 두었다고.
이도는 캐릭터에 맞게끔 상당히 진지하고 정확한 액션으로 가져갔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흐름을 잠시 끊어주는 액션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문백의 액션은 시청자들이 무거운 주제를 잠시 내려놓고 피식 웃으며 쉬어갈 수 있었으면 했다. 어릴 때 성룡 영화를 보면서 액션 속에 담긴 재치 있고 유쾌하며 통쾌한 매력에 끌렸는데, 문백의 액션에도 이런 느낌을 담고 싶었다. 후반부에는 액션이 많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엣지 있게 표현하려 했다.
상대역인 김남길과 호흡은 어땠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라도. (웃음)
형이 현장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정말 많이 내주셔서, 후배 입장에서는 많이 기대고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또 장난도 워낙 많이 치셔서, 예를 들어 내가 카메라 세팅에 맞춰 자리에 서 있으면 자꾸 돌아다니시는 거다. 그래서 촬영이 늦어질까 봐 “형, 여기 서 계셔야 해요. 늦어진다잖아요” 하고 말한 적도 있었다. (웃음)
가벼운 질문인데, 당신의 트리거는 언제 당겨지는지.
공공질서나 기본적인 규칙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분노하는 편이다. 또 스스로 분노할 때도 많다. (웃음) 집안일하면서 냉장고를 제대로 닫지 않는다거나, 고양이 화장실 정리를 제때 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사소한 일상에서 분노를 느끼곤 한다. (웃음) 그런데 화가날 때 상대에게 그 감정을 표하기보다 혼자 삭히는 쪽이다. 지금 꼭 말해야 하는지 그 타이밍을 되짚어 보는 편이다. 일하면서 점점 더 그렇게 돼 가는 것 같긴 하다. 내성적이다 보니 생각이 자꾸 꼬리를 물 때가 많은데 그럴 때는 한숨 자면서 생각을 끊어내곤 한다.
안으로 삭이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일 것 같은데, 해소 방법은 무언가.
일단 맥주를 마시고, 기분이 안 풀리면 좀 더 마시고 나서 잠을 잔다. 말했듯이 생각을 끊을 수 없을 때는 잠이 최고다. 한숨 자고 나면 아무 생각이 안 나는 편이다. 나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기 때문에 평소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초반에 문백의 초딩 같은 설정은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웃음) 무언가를 생각할 때 가볍게 가볍게 생각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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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0년차다. 배우로서 김영광의 강점은 무얼까. 스스로 평가하기에 어떤 배우 같은가.
음… 과하지 않은 걸 잘하는 것 같다. 너무 튀게 보인다거나 극의 상황에서 너무 벗어나서 붕 떠 있다거나 하지 않는 것 같다. 한마디로 극에 잘 묻어난다고 할까. 그간 장르물을 많이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로맨스를 할 때 기분이 좀 더 좋은 것 같다. (웃음) 장르물은 (사건의) 진행에 따라 순서에 맞춰 어느 순간 폭발해 줘야 해서, 좀 더 어려운 것 같다. 또 긍정적이라, 무언가를 맡으면 항상 해내려고 노력하고 나쁜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30대 후반에 들어섰다. 연기적인 고민도 있을 것 같다.
제일 고민되는 부분은 체력인 것 같다. 예전보다 확실히 금방 지치더라. 배우로서는 계속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가려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작품을 만나려 한다. 스스로 오랫동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계속 불어넣고 있다. (웃음) 사실 문득문득 공허해질 때가 있지만, 반면에 여러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면서 기운을 받는 부분도 있다. 연기할 때의 기분 좋음이 있다.
예전, 10년도 더 전의 인터뷰에서 버킷 리스트로 ‘긴 테이블’을 갖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이루었는지, 또 현재의 버킷 리스트는.
당시 갖고 싶었던 테이블을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다. (웃음) 버킷리스트를 따로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고양이들과 여행을 가고 싶다. <트리거>와 동시에 고양이 두 마리(문이, 백이)를 키우게 됐다. 그때 마침 주택으로 이사갔거든. 처음에는 조용해서 좋았는데 너무 조용하다 보니까,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하는 날이 있는 거다.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들도 있고, 너무 귀엽기도 해서 집에 들이게 됐다.
문이랑 백이가 힐링을 선사할 것 같은데. (웃음)
집에 들어가면서 ‘문이야~’, ‘백이야~’하고 부르면 나와서 맞아준다. 처음에는 ‘아빠 왔다’ 이런 말이 스스로 오글거려서 못 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안아서 막 부비부비하기도 하고. 반겨주는 느낌이 너무 좋다. 예전에는 자체로 딱딱한 느낌의 사람이었다면 고양이를 키우고 나서는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다. 둘 다 메인쿤인데 식성이 완전히 다르다. 문이는 잘 안 먹고, 백이는 너무 많이 먹어서 걱정이다. (웃음)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강하늘, 차은우 등과 함께 찍은 영화 <퍼스트 라이드>가 곧 개봉한다. 또래들끼리 찍은 코미디라 각자 아이디어를 많이 내며 태국에서 너무 재미있게 찍었다. 개봉일이 대략 10월 2일쯤인데 작품 홍보할 때 은우가 휴가를 나올 수 있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문백 캐릭터는 어떻게 남을 것 같은가.
총기 액션은 처음이라 새로웠던 작품이다. 사실 찍은 지 1년 반 정도 돼서 지금은 ‘문백’하면 우리 고양이가 먼저 떠오른다. 문이와 백이를 만나게 해준 아주 소중한 캐릭터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5년 8월 21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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