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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된 상징, 지배된 배우, 단순한 이야기 한반도
gantrithor 2006-07-14 오후 8:42:53 1992   [16]

poster #2

 때는 멀지 않은 미래, 북한과 한국은 어느덧 왕래가 가능해질 정도로 가까워졌고 경의선도 모두 복구되어 개통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경의선 개통을 시작해야 할 자리에 일본 정부의 청천벽력같은 한 마디가 떨어진다. "경의선 개통을 허가할 수 없다." 이어 100년전 대한 제국과의 조약에 따라 경의선과 경부선의 권한은 모두 일본에게 있다는 일본측의 주장이 이어진다.

한국 정부는 일본측의 이 주장에, '받아들여야 한다' '말도 안된다' 두 파로 나누어지고, 이 상황에서 '대한 제국의 진짜 국새가 찍히지 않은 조약은 무효다' 라는 최민재 전 서울대 교수의 주장이 제기된다. 고종이 훗날을 위해 스스로 가짜 국새를 만들어 조약에 거짓 서명을 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 이야기가 사실로 증명된다면,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사 100년은 새로 쓰여질 수 있다.

 
이 대목에서 국새를 둘러싼, '이상' 지향 인물들과 '현실' 지향 인물들의 대립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군데군데 한반도의 100년 전 상황을(을미사변과 고종 독살) 오버랩시키면서 말이다. 여기까지가 한반도의 공개된 스토리이자, 이 영화 이야기의 전부다.
 
 
 
 최근의 강우석 영화와 다를 바 없이 한반도는, '직설적 방식' 과 '이분법적 선과 악의 대립구도','사회적 메시지' 이 세가지를 충실히 이어나가고 있다. 게다가 덧붙이자면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 위로 붕 뜬 느낌까지. 확실한 강우석 감독의 영화라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다.
 
하지만,
 
실미도의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성공 이후, 감독은 자신의 이분법적 사고와 직설적인 스타일에 너무 자신만만해 있는 듯 싶다. 우리가 실미도에서 감동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그의 직설적인 메세지도, 이분법적 선과 악의 대립구도도 아니었다. 바로 '인간으로서의 아픔' 을 시대의 횡포와 겹쳐 그려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감독은, 전작 '공공의 적2' 에서는 사회적 메세지를 표방한 자신의 이야기에 더 주력하더니, '한반도' 에서는 아얘 그 사실을 간과한 채 저 높이 있는 대통령, 국정원 비서, 국무총리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만들어버린다. 그것도 인간적인 고뇌가 부족한, 감독 자신의 주장만 줄기차게 대변하는 케릭터들을.
 
따라서 등장인물과 공감대가 적다. 이야기는 단순하게 이것저것 짚어나가는 형태로 긴장감 없이 진행된다. 블록버스터의 시각적 효과도 어쩐지 밋밋하다.... 따라서 카타르시스도 부족하다. 한국인이라면 자연히 느낄 답답함과 비통함 뿐이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며 비통하게 죽어간 대원들, 그런 부대원들을 위해 남모르게 알사탕을 준비해갔던 상사, 냄비를 긁어가며 탄 라면을 먹는 부장검사, 부하의 죽음에 '죄송합니다' 를 연발하며 무릎꿇었던 검사......나는 분명히 강우석 감독이 전한 '인간' 들의 아픔에 눈물지을 수 있었고,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나 '실미도' 는 그 감동을 시대적 아픔과 잘 버무려, 필자에게 한동안 잊지 못할 카타르시스를 전해주었던 영화였다. 천만 관객의 신화는 바로 그것에서 나온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공공의 적 2 에 이르러 강우석 감독은 그런 '인간' 의 아픔보다 '(감독 자신이 주장하는) 사회적 메세지' 에 더 주력하기 시작한다. 마치 인간이 사회에 잠식당하듯이. '한반도' 는 그 결정판으로, '인간' 은 없고 오직 '메세지' 만 있었다. (그것이 언론에서 말하는 감독의 '야심' 이라고 한다면 맞을까.) 영화 전체를 장악해버린 감독으로부터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던 배우들은 오직 역사 속의 인물들, 고종과 명성황후 이 두 사람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필자가 감동을 느낀 부분은, 끝끝내 국새를 찾아낸 최민재의 환호가 아니라 "남의 땅에 피를 적실 수 없다" 라며 대례복을 입고 죽어간 명성황후의 당당한 모습과, 자신의 신하들에게마저 배신당하며 죽음을 맞는 고종의 비통한 목소리. 바로 그것들이었다. 명성황후에 '거물급 배우' 강수연을 선택한 것과 고종에 '조연으론 아까운 연기파' 김상중을 선택한 것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비록 역사 속에선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모습으로 기록된 두 인물들이지만, 적어도 '한반도' 를 본 관객들은 김상중의 결단력있는 목소리와 강수연의 당당한 눈빛으로 그들을 기억하리라.
 
감독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사회적 메세지보다. 이와 같은 '인간' 으로서의 아픔과 고뇌를 보여주는 쪽에 좀 더 중점을 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 에서의 대통령과 국무총리, 이성현과 최민재는 '케릭터' 가 아닌 '신념' 의 상징이었을 뿐이고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도,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하기에도 모자란 감독의 대변인으로 그려질 뿐이었다. (주변적 인물 중에선 강신일이 은은히 자신의 개성을 빛내긴 하지만......그는 말 그대로 주변적 인물이다.)
 
특히나 관객의 '눈' 을 대신해야 할, 영화 전체에서 유일하게 입체적 인물로 등장한 이성현(차인표 분)은 정말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고뇌도, 아픔도, 특별한 전환기도 없이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꿔버리는 것은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 초반의 모습과 너무나도 매치가 되지 않았다. 초반에 너무 눈에 힘을 준 탓인가, 이야기도 없이 상징을 강요당한 탓인가.
 
 
 
 영화 '한반도' - 서론에서도 얘기했지만 '한국인' 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할 비통함과 답답함 때문에 2 시간 30분이 후딱 지나가는 영화임엔 틀림없다. 또한, 역사를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작품인 것도 맞다. 하지만 그것을 세부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케릭터는 감독의 메세지에 잠식되어 '상징' 으로 뭉뚱그려져 있고, 때문에 이야기 자체가 단순해져 버렸다는 평가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속 고종의 목소리만큼이나 단호하게 '나는 장사꾼이다' 라고 말했던 강우석 감독, 다음 작품에선 좀 더 '인간' 에게 초점을 맞춘 영화로 우리에게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분명 더 많은 관객들에게, 더 많은 전문가들에게 '공감대' 를 안겨줄 수 있는 방법일 테고, 나아가 그가 이루어낸 신화를 더욱 더 길고 크게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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