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도파민의 시대, 창작자의 고민은 깊어진다.. 넷플릭스 <더 에이트 쇼> 한재림 감독
2024년 5월 29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쇼에 참여한 여덟 남녀가 있다. 순전히 카드 뽑기 하나로 1분당 1만원부터 34만원까지 한순간에 계급이 결정된 쇼, 그 안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시간을 벌려면 웃기든, 울리든, 놀래키든, 자극을 주든 어떻게든 주최측에 ‘재미’와 ‘흥미’를 제공해야 한다. <우아한 세계> <관상> <더 킹> <비상선언>의 한재림 감독이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을 원작으로 한 <더 에이트 쇼>로 시리즈에 처음 도전한다. 공개 후 ‘현실 사회의 축소판’, ‘자본주의 그 자체’라는 호평과 동시에 답답하고 거북하다는 불편의 시선이 엇갈리는 가운데 한재림 감독을 만났다. 도파민의 시대를 사는 창작자로서 어떻게 재미를 일굴지, 그 한계와 선은 어디인지 늘 질문한다는 감독의 고민을 들어본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과 비슷하다는 평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오징어 게임>이 서바이벌 작품으로 원체 큰 성공을 거둬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더 에이트 쇼>는 룰도 그 갈등도 다르다. 우린 ‘같이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이야기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리즈 연출과 OTT 플랫폼 공개 방식 모두 처음인데, 그간의 작업과 무엇이 다르던가.
영화는 흥행 스코어 부담이 있어 약간 공포라면, (웃음) OTT는 상대적으로 반응이 천천히 올라와서 편한 부분이 있다. 또 전 세계 시청자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생겨 설레기도 한다. 뜨겁고 즉각적인 반응에서 오는 영화의 쾌감과는 별개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마음이 드는 게 OTT의 장점인 것 같다.

연출 시 느낀 차이점이 있다면.
영화는 두 시간 동안 관람을 강제하는 거라, 어떻게 보면 관객에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슨 말이냐면 일부러 지루하게 하다가 마지막에 쾌감을 몰아칠 수도 있고 또 커다란 화면 안에 아주 미세한 표정까지 모두 담는 등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그 범주 역시 넓다. 그런데 드라마는 초반에 시청을 지속할지 멈출지 결정되는지라 작가(글)와 대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또 다음화를 보게 하는 미션이 매화 주어지는 셈인데 이 부분이 어려우면서도 매력적이었다.

원작인 배진수 작가의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에서 끌린 점은.
원래 ‘머니게임’을 제안받았고, 서바이벌 장르를 비켜나간 지점이 많아 흥미로웠다. 보통 서바이벌 게임의 주인공은 그 능력치가 높고 점차 상승하는 구조인데, ‘머니게임’은 주인공임에도 별다른 능력이 없는 데다 뭔가 하면 할수록 위기를 맞는 점이 블랙코미디 같았다. 여기에 참가자가 한 명도 죽으면 안 되는 룰의 ‘파이게임’을 합쳐 하나로 만들면 일반적인 서바이벌 룰을 비틀 수 있겠더라.

특히 ‘파이게임’은 시간이 곧 돈이 되는 구조라, 참가자들이 시간을 벌기 위해 주최측에게 어떻게든 재미를 주려고 노력하는 게, 마치 콘텐츠를 만드는 내 모습 같아 크게 이입됐었다. 어떻게 하면 관객(시청자)의 사랑을 받을지 늘 고민하며 콘텐츠를 만들고 어떤 형태로든 그 보상을 받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과연 ‘재미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층별로 나뉜 수직 공간과 가짜로 만든 소품 등 세트도 독특하다.
참가자의 계급을 직관적이고 정확하게 이해시키기 위해 ‘계단’이라는 클래식한 상징을 활용했고, 계급에 따라 방 크기를 달리 갔다. 가짜 물건들은 참가자들이 돈을 벌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장치로, 가짜를 보면서 진짜를 더욱더 욕망하도록 세트를 구성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8화의 끝 무렵 ‘8층’(천우희)이 ‘1층’(배성우)의 쇼를 보고 ‘신파지만 괜찮네’하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작품 전체를 평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는데, <더 에이트 쇼>를 자평한다면.
쇼츠 등 흥밋거리에 치중하는 도파민의 시대에 약간의 사유랄지, 고민이 없어진 시류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창작자로서 관객이 원하는 재미만 줄 것인지, 아니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 건 아닌지 그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나 역시 짧은 영상에 익숙해져 이를 즐기고, 어떨 때는 극장에 가면 힘들기도 해서… (웃음) 무엇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를 떠나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라는 내 고민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시네마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상징적으로 담은 부분도 있다. 무성영화 형식의 오프닝부터 빚쟁이에게 쫓기던 ‘진수’(3층)(류준열)가 우연히 지나쳐 간 곳이 영화 촬영장소인 점, 장 뤽 고다르의 작품을 비롯해 옛 고전을 곳곳에 오마주한 것 등이 그렇다. 또 ‘1층’(배성우)이 마지막 쇼에서 바닥으로 추락한 건 현재 영화가 처한 어려운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녹아 있다.

‘현실의 축소판’이라는, 자본주의를 한눈에 표현했다는 시선이 많다.
자본주의를 풍자한 블랙 코미디나 풍자극 등 여러 해석이 가능할 거다. 계층을 일부러 정확하게 나눠 놔서 몇 층에 이입하는지에 따라 달리 보일 것이다. 특정 층을 부각하기보다 골고루 초점과 시선을 주어 좀 더 입체적으로 생각해 볼 작품이 되길 원했다. 어느 목표 지점으로 관객을 이끌기보다 조금 떨어져서 열어 두고 싶은 바람이 있었고, 이런 면에서 재미있게 잘 나오지 않았나 싶다.

‘5층’(문정희)은 원작에 없는 오리지널 캐릭터인데, 그를 등장시킨 이유는.
중간중간 전환을 마련하는 캐릭터가 필요했고,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접할 인간상이자 제일 많이 존재하는 중간 계층을 상징하기도 한다. 관객이 보기에 답답한 면이 있는 인물이라 자칫하면 극을 위해 존재하는 기능적인 캐릭터로 보일 수 있어, 처음부터 연기 잘하는 문정희 배우를 염두에 두며 글을 썼었다.

극 중 화자인 3층의 류준열 배우와 8층의 천우희 배우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더라.
3층은 극에 활력과 유머를 불어넣으며 끌고 갈 인물이라 바로 류준열 배우가 생각났다. 둘 다 사진을 좋아해서 가끔 연락하는 사이거든. 이런 웹툰이 있다고 하니 바로 하고 싶다고. 8층은 제일 어려운 캐스트였다. 계속 갈등을 제시하고 논리적이지도 않고 순수하면서도 얄미운 캐릭터라 양면성을 지닌 천우희 배우가 떠올랐다. 발랄하고 예쁜 일상적인 역과 <곡성>에서와 같이 센 역도 가능한 분이라 제안드렸다.

극 중 자칭 타칭 브레인인 ‘7층’은 박정민 배우가 맡았다. 당신이 투영된 캐릭터가 아닌가 한다.
박정민 배우는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감독이 페이버릿하는 배우다. 오랜만에 지적인 얼굴을 보고 싶었고, 느끼하지 않게 설명할 수 있는, (웃음) 캐릭터의 단점을 잘 이겨낼 수 있겠다 싶어 평소 형 동생 하는 관계라 편하게 제안했다. 7층은 극 중 직업도 그렇고 당연히 어느 정도 내가 투영될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물론 나는 7층처럼 똑똑하지도 잘 생기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말했듯이 어떻게 재미를 일굴지, 어느 지점에서 재미를 줘야 할지에 생각이 많다. 요즘처럼 순수한 오락 혹은 재미가 선호되는 시류에서 과연 ‘영화감독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 라는 고민이 (나와) 7층이 맞물린다고 하겠다.

이번 <더 에이트 쇼>를 통해 지금 같은 고민을 담은 질문을 던졌다고 했는데 답은 찾았는지.
지금은 질문을 던졌을 뿐 답은 아직이다. 창작자로서 계속 찾아가야 하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이번에 만들면서는 도덕적 고민이 많았다. 가령 참가자들이 하는 장기 자랑 중 ‘6층’(박해준)과 ‘8층’의 정사 장면이 그런데 시청자가 흥미로워할 장면이지만, 오히려 빼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관음의 쾌감이 있겠지만, 보여주지 않은 건 재미를 위한 어떤 한계나 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후반부의 고문 장면도 마찬가지다. 폭력의 미화나 도파민의 분출이 아닌 폭력의 끝은 결국 파괴와 혐오라는 걸 보여주려 했다.

지금 언급한 후반부 수면 고문 장면은 거북하다는 의견이 많다.
그 장면은 원작에도 있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1972)를 오마주한 부분도 있다. 이 영화 역시 폭력을 비판하는 영화라 헌정했고, 나 역시 폭력의 묘사가 쾌락이나 재미로 연결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런 장면이 보기 거북할 수 있어서 참가자들이 고문 장치를 차고 있는 장면은 최대한 줄이고 3층 진수의 환상을 통해 상황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뒀었다.

매화 오프닝이 쇼츠 같은 화면 구성인데 어떤 의도를 담았는지.
쇼츠 같이 시작해서 그들이 벌이는 쇼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 사이에 혼란을 주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무성 영화 같은 느낌으로 이 쇼는 영화의 메타라는 걸 알리는 동시에 현실의 답답함을 보여주고자 한 구도이기도 하다.

원작에 비해서 해피엔딩이다. 쇼에서 탈출한 참가자들이 ‘1층’의 장례식장에서 모이는 결말이 흥미로운데 이 역시 의도가 있을 거다. (웃음)
남은 자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시스템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긴, 다시 말해 시스템이 만든 희생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의도를 담았다. 직접 장례식장에 올 인물, 직접 오지는 안 와도 화환 정도는 보낼 것 같은 인물, 아니면 자기 할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해서 오지 않을 인물 등 캐릭터의 면면을 생각해서 한자리에 모이도록 했다.

쇼의 주최자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 혹은 관객이 아닐까 한다.
주최측은 관객이라고 생각했다. 여타의 서바이벌 작품은 주최측이 선명한 ‘악당’이고 그래서 관객은 죄책감에서 빠져나오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더 에이트 쇼>는 ‘내가 혹시…’ 하고 관객(시청자)을 건들이는데, 이건 의도한 부분이다. 즉각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시류 속의 우리 혹은 나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다음 작품도 시리즈다. <현혹>이라고 웹툰 원작인 뱀파이어물로 지금 글을 쓰는 중이다. 장르성이 강한 멜로라 이번보다는 고민이 적을 듯한데… 또 모르지, 만들다 보면 행복이나 영생 등 같은 여러 물음이 담길 수도. (웃음)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4년 5월 29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0 )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